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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증거(시편116:1-14)
고영수 2023-11-18 추천 0 댓글 0 조회 220
[성경본문] 시편116:1-14 개역개정

1.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2.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3.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4.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5.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

6.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7. 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8.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9. 내가 생명이 있는 땅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10. 내가 크게 고통을 당하였다고 말할 때에도 나는 믿었도다

11. 내가 놀라서 이르기를 모든 사람이 거짓말쟁이라 하였도다

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14.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믿음의 증거(시편116:1-14/2023.11.19.추수감사절)

 

1. 우리가 지난 한 해를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인생은 광야와 같다고 하는데 맞는 말입니다.

즐거움과 기쁨은 잠시뿐이고 더 긴 시간과 많은 사건은 우리를 괴롭히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우리는 내가 만난 인생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능력이 없을 정도로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현실을 가지고 내가 불평하고 낙심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첫째는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과 둘째는 늘 불평불만을 품고 사는 사람입니다.

불평하며 인생을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은 늘 남들과 비교하고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므로, 아무리 좋은 환경과 조건이 주어져도 잘못된 생각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삶이 고통스럽고 주위 사람들이 반갑지 않습니다. 그래서 점점 외톨이가 됩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은 모든 일에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지금은 어려움을 당해도 이 어려움을 딛고 더 복되고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다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요셉이 그랬고 목동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이 그랬습니다.

이 사람들을 보면, 위기와 고통과 억울함과 인생의 장애물이 그들에게는 성공으로 향하는 기회가 되었고, 연약한 믿음을 굳세게 하는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우리의 삶도 현실만 보면, 미래가 보이지 않고 답답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장애물이 많이 있지만, 그러나 믿음의 마음을 가지고 돌아보면,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사랑과 약속에서 늘 신실하신 분이요, 어려울 때마다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떤 마음으로 어떤 자세로 나아가야 할지, 그리고 내 인생에 무엇으로 채워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지 말씀을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2. 오늘 우리들의 문제는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지 알지 못하고 그런 일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찾기보다는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내 마음대로 판단하고 내 마음대로 행동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다 어려움을 만나고 실패하면 내 탓이 아니라 전부 하나님을 원망하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내 안에서 감사보다는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이 없이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다가 어려움을 당하고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이런 나를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생각해 보았습니까?

지난주의 다니엘기도회 강사가 하시는 말 중에, 우리에게 감사가 없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그래서 당연히 감사가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두려움과 근심이 사라지지 않는 것도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가 감사 생활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많은 고난의 골짜기를 통과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시40:5절에 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라고 고백 하였습니다.

결국 우리의 문제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의지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이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해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14:14) 고 하셨습니다.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믿음은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불평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3. 그렇다면 믿음이 무엇입니까?

46편을 보면, 세상에서 어떤 환란을 당하거나 미래가 불투명해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이고,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는 주어진 상황과는 관계없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금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이고, 그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이고, 지금까지 받은 바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50:23절에 보면,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한" 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창조의 목적을 성취하려면 하나님께 감사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극복해야 할 장벽 중에 가장 큰 장벽은 감사를 막는 장벽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농사도 짓지 않는데 무슨 추수감사절이냐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우리가 논밭에 나가서 농사는 짓지 않지만, 인생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농사짓는 원리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자식을 낳아 키우는 것도 자식 농사라고 합니다. 사업도 학업도 다 씨 뿌리고 가꾸고 거두어들이는 농사의 원리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일년 동안 이렇게 영육간에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는데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인데 어떻게 감사가 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올 한해는 모든 것이 엉망이고 내 뜻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으니 감사할 수 없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축복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왜 우리 가는 길을 막으시고, 왜 장애물을 치워주지 않습니까?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내가 가는 길을 막으시는 것은 우리를 더 복된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막으시는 것입니다.

 

4. 16:6절 이하에 보면, 사도바울이 실라와 함께 2차 전도여행을 떠났을 때, 에베소를 전도의 목적지로 삼았습니다. 이유는 그곳이 아시아 최대 무역항구로 동양과 서양을 잇는 너무 중요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곳에 가면 전도의 열매를 많이 맺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령은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북쪽인 비두니아로 가려고 애를 썻지만 이곳도 성령께서 가는 길을 막으셨고, 그래서 소아시아 북쪽에 있는 마지막 항구인 드로아로 내려갔습니다.

그곳에 가서야 바울은 왜 성령께서 자신들이 가려는 길을 막으셨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16:9절에 보면, 아시아보다는 마게도냐로 건너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더 급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순수한 마음으로 노력해도,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뜻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말하기를,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고 하면서,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은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높"(55:8-9)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감사해야 하고, 내 인생이 다 망한 것 같아도 감사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져 주시는 목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영어의 생각하다는 Think와 감사하다는 Thank는 같은 어원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생각이 없으면 1년의 세월을 보내도 감사 하나도 없지만, 생각이 깊으면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풍성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시편기자는 내 인생에 행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꼬, 라고 탄식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그의 생각이 깊고 많기 때문입니다.

 

5. 하박국 선지자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했고, 유다도 바벨론 앞에서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아무런 소망이 없는 시대였습니다.

유다왕 여호야김은 무죄한 사람들을 죽이고 부정과 착취가 심했고, 믿음의 사람들을 박해했습니다.

암흑의 시대였습니다. 선지자조차도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의심이 갈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고백한 말이 무엇입니까?

3:17절에 보면, 아무런 소득도 소망도 원하는 그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는 그런 상황에 놓여 있었지만, 그는 고백하기를,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3:18) 고 하였습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내게 주어진 현실만 생각하면, 절망하고 원망하고 낙심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도무지 기뻐하고 감사할 수 없지만, 그러나 한 가지,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내가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의 조건을 주어진 환경이나 소유에 두면, 아무리 많은 소득과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가도 만족이 없고 감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처럼, 구원의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로 인하여 감사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병든 마음과 잘못된 생각도 고쳐주시고, 저주받은 환경도 축복으로 회복해 주시고, 그래서 감사로 찬송하면 귀신도 물러가는 것입니다.

 

6. 우리 예수님도 벳세다 광야에서 모두가 굶주렸을 때, 겨우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고도 축복하시고 감사했더니,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고 열두 광주리에 남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기적은 언제 일어납니까? 예수님 처럼 감사 후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마지막 만찬 석상에서도 떡과 포도주를 가지시고 먼저 감사하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떡과 포도주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십자가에서 찢으시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감사하실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생각만 해도 두렵고 가슴이 울렁거리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예수님은 감사하셨습니다.

그 감사를 하나님이 받으셨고, 천사를 보내 힘을 주셨고, 마지막에는 부활의 영광을 얻으시고 가장 높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시편 기자가 하나님을 향해 감사할 수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평생에 기도하리라고 결심하였고, 가장 어려울 때, 위기의 순간에 지키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을 경험하므로 구원의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12절에 가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라고 하면서, 13절에 가서는 여호와의 이름을 높이고 14절에 가서는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고 하였습니다.

 

7. 단순한 종교적 형식을 가진 그런 감사가 아니라, 내 심령과 뼛속 깊은 곳에서 구원의 하나님을 체험하고 올라오는 그런 감사야말로 우리의 기쁨의 찬양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 감사가 되는 줄 믿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가 집으로 배달되는 학교 성적표 때문에 부모에게 야단맞을 생각에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집으로 갔는데, 나쁜 성적표에 충격을 받은 아버지가 책망을 하면서 이따위로 공부할 것 같으면 대학은 어림도 없다 차라리 나가서 죽으라고 했더니 아파트 10층 옥상에 올라가서 투신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부모나 자식이나 그 마음에 감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것 만으로 감사하고, 부모가 책망하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한 것인데,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비극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증거는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얼마나 넘치고 있느냐를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믿음의 증거는 예수님처럼 십자가 고난 속에서도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 감사가 우리의 병든 마음도 치료하고 잘못된 생각도 고치고, 저주받은 환경도 회복되고 하나님께는 큰 영광과 기쁨이 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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