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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노래(신명기32:1-14)
고영수 2023-11-25 추천 0 댓글 0 조회 216
[성경본문] 신명기32:1-14 개역개정

1.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

2. 내 교훈은 비처럼 내리고 내 말은 이슬처럼 맺히나니 연한 풀 위의 가는 비 같고 채소 위의 단비 같도다

3.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너희는 우리 하나님께 위엄을 돌릴지어다

4.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5.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고 삐뚤어진 세대로다

6.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

7.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

8. 지극히 높으신 자가 민족들에게 기업을 주실 때에, 인종을 나누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백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9.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11.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12.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13. 여호와께서 그가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14. 소의 엉긴 젖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에서 난 숫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게 하셨도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슬픈 노래(신명기32:1-14/2023.11.26.오전)

 

1. 사카무라 신민(坂村真民,1909-2006)은 구마모또 출신의 시인으로 한국에도 두 번 다시 없는 인생이니까(二度とない人生だから) 라는 제목으로 시집이 소개되었고, 일본 교과서에도 그의 시가 소개될 정도로 일본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시인입니다.

그는 한국의 시인 중에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 같은 청록파 시인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그가 신문사나 잡지사를 통해 등단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집을 만들어 무료로 나누어 주거나 자신이 잡지를 직접 만들어 배포하면서 점점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유명해진 그런 시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시를 쓰게 된 동기는 그의 어머니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3살쯤 되었을 때 어머니에게 업혀서 논 한 가운데 있는 공동묘지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는 젖을 먹지 못하고 죽은 영아들의 무덤이 있었고, 어머니는 그곳에 자신의 젖을 짜서 바르고 닦기를 반복하면서 절을 했다고 합니다.

세월이 흘러 시고꾸의 어느 학교의 교사로 발령이 나서 고향을 떠나게 되었는데, 홀로 남은 어머니를 당분간 찾아뵐 수 없다고 생각하고,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어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지만, 어머니는 조용히 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건너편에 앉아 있는 노부부의 대화를 엿듣고 계셨는데, 그 이야기를 한번 들어 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딸이 이혼하고 부모님이 계시는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이런 아픈 이야기를 아들에게 좀 들어보라는 것입니다.

고통하는 사람을 향해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고, 이것이 어머니와의 마지막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가 무덤에서 행하였던 바보 같은 그런 행동이 자신에게는 도리어 큰 감화를 주었고, 그것이 자신에게 불교 신자로 시인으로 살 수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은 젊은 여자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평소에 내 어머니처럼 이런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는 부모라면, 자식을 위해 교훈이나 훈계가 특별히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고 남들에게 존경받는 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삶을 통해서나 교훈으로 많은 감화를 주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녀는 부모로부터 받은 감화와 교훈을 귀한 가르침으로 간직하는 것입니다.

 

2. 이것은 우리 믿음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기도를 받으며 말씀을 받으며 영적인 감화를 받고 자라나는 자녀들은 쉽게 신앙을 버리지 않으며, 받은 영적인 가르침을 가지고 평생에 되새김질하며 살아가는 법입니다.

그런데 이 신명기의 내용을 보면,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 11월에 창세기부터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는 어디에 있던지 성경책에 샤프로 기록을 하면서 읽었는데, 이번에는 주로 휴대전화에 설치한 성경 프로그램을 가지고 읽기 시작하다 보니, 생각 이상으로 그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기 원하시면 한 번 시도해 보시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 말씀을 드립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과거를 보면, 그들이 걸어온 길은 한마디로 하나님과의 동행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은, 그들이 택함을 받은 민족이라는 것이고, 그들이 광야 40년 동안에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입었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출애굽의 역사는 결코 일어날 수 없었고, 가나안을 바라볼 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본문 4-6절에서도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없이는 도무지 살아갈 수 없는 그런 백성인데도 그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지만, 진정한 사랑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서로를 주고받을 때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3. 생명의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임하고, 지혜는 여호와의 말씀에서 나오며, 연약한 인생을 도우시고 은혜 베푸실 분도 우리 주님 한 분뿐이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싫어합니다.

내 힘으로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고, 내가 가진 지혜와 지식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에 대해서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도"(고전1:21) 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 이외에는 믿음의 세계를 알 길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 없이는 누구라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생명을 걸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문 7절에도 보면,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고 하면서 이것을 아버지와 어른들에게 물으라고 했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행하신 일이 무엇이며,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원하고 계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는데, 과연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 하나님이 애굽 땅에 열가지 재앙을 쏟아부은 후에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고, 애굽의 군대를 홍해 바다에 다 수장시킨 후에야 온전한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가나안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리고 그들을 위해 준비하시는 축복과 영광도 알지 못하였고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4. 안타까운 것은 본문 4-6절에 보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태도가 너무나 다름을 볼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6절에서, "어리석고 지혜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고 이스라엘에게 반문하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집안에 가장인 남편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에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어느 날 보니 그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면서 거기에 온 정신이 다 팔려 있다보니 가정과 아이들을 전연 돌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이 사실을 그녀의 남편이 알게 되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이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을 향한 태도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5절에서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서 악행을 했다고 했다고 하면서, 너희는 내 자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자녀라면 결코 이런 행동을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본문의 내용은 하나님의 사랑에 배신으로 응답한 이스라엘에 대한 슬픈 노래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나 우리나 이런 문제에서는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받은 복과 은혜로 인해 감사해야 하는데, 도리어 축복의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향해 달려가고, 제 마음대로 육체의 정욕을 따라 부끄럽게 살아갑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관한 관심보다는 세상이나 우리의 정욕에 관심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제가 신문스크랩을 대략 50년 쯤 하다 보니 약 70년 세월의 분량의 신문이나 잡지가 집에나 교회 사무실에 여기에 대한 자료가 많이 쌓여 있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이런 것이 인생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죄로 말미암아 혼란과 고통 속에 있으므로, 그 어떤 세상의 지식이나 경험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많은 것을 알고 많은 것을 소유할수록 도리어 평안이 없고 문제를 만난 인생에게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5.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믿는 자에게 참 평안과 기쁨과 새 힘을 주고 있습니다.

40:31절에 보면,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 감 같을 것이" 라고 하였으며, 예수님은 우리에게,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14:26-27) 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연약하고 유혹에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에 배신으로 반응하지만, 그런데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신명기의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모세가 부르는 이 노래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의 장래에 대한 일을, 그들의 자손이 어떤 길을 갈 것인지 미리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씀을 미리 깨달아서 장래의 죄악을 미연이 방지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노아의 시대를 보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서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실제로 노아가 방주로 들어가기까지 120년 동안 하나님의 심판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노아를 미친 노인으로 취급했습니다.

소돔성의 롯의 사위들은 장인이 말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농담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우리가 사는 21세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어떻게 반응을 하고, 우리 미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던지 상관이 없이, 우리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자신의 뜻대로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으로, 반드시 그가 원하시는 때에 그의 말씀은 성취되고야 만다는 사실입니다.

 

6.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으로, 이스라엘이 반복된 죄 가운데 빠져도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셨고, 오늘 우리에게도 변함이 없으신 이유는, 그들과 우리를 향하신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치 호세아서의 고멜 같은 우리에게도 변함없는 사랑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신 계획을 믿는다면, 우리는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운명을 믿고 사는데, 왜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믿지 않습니까?

8:16절에 보면,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이 많고 부족한 것이 많아도 변하지 않는 사실 한 가지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그의 사랑을 입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사랑의 대상이고, 그분의 기쁨의 대상이고, 우리를 위해 더 놀라운 미래를 준비하고 계신다는 이 사실에 대해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문제는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며, 우리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준비하며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신명기의 핵심인 6:5절의 말씀에 있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제일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22:37)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면서 잘 안됩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연약한 육체나 삶의 환경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다른 곳에 빼앗기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운명을 믿는데, 우리는 그 운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마음의 변화입니다.

 

7. 마음이 변화되려면, 본문 1-2절의 말씀처럼 여호와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밭에서 자라는 채소 위에 비가 내리면 그 단비를 흡수하여 채소가 단맛을 내듯이, 우리는 말씀을 가까이하고 그 말씀이 오늘 내게 무엇을 말해 주는지 귀를 기울일 때, 우리의 마음은 주님을 향하게 되고, 우리의 삶의 방향도 말씀을 따라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4절의 말씀대로, 내가 믿고 따라가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깨닫게 되고, 그 말씀이 진리 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하고 의로운 자로 세워 주심으로, 우리는 하나님 공의의 도구가 되어 귀하게 쓰임 받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14:1) 고 하셨습니다. 나를 믿으라는 이 말씀은 약속하신 말씀을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살을 찢고 피를 흘리신 이 은혜를 붙들라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기의 눈동자같이 지키셨고, 11절 이하에 보면, 독수리가 새끼를 보호하듯이 그렇게 행하셨고, 세상의 온갖 좋은 것으로 그들의 양식으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의 약속을 믿고, 그의 십자가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은 물론이고 우리 자녀들이 본문의 말씀처럼 모세가 불렀던 이 슬픈 노래를 부를 필요가 없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기쁨으로 찬양하면서 미래의 더 큰 축복과 영광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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