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 설교 자료 >
  • 주일예배 설교
하나님의 아들(요한복음1:29-30,34)
고영수 2023-12-02 추천 0 댓글 0 조회 182
[성경본문] 요한복음1:29-34 개역개정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나님의 아들(요한복음1:29-30,34/2023.12.3.오전)

 

1. 가을 단풍은 멀리서 보면 너무 아름답지만, 막상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면 쓸만한 잎사귀가 별로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가지에서 떨어지면 힘을 잃고 바람에 이리저리 휘몰려다닐 뿐 아무런 의지도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나중에는 부서지고 시커멓게 변하다가 흙으로 돌아갑니다.

이렇게 단풍잎이 혼자는 별 볼 일 없는 존재처럼 보여도, 가지에 붙어서 함께 모여 있을 때는 아름다운 산천을 이루고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몸된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바깥에서 보면 은혜롭고 사랑이 넘치지만, 그 안에 머무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자세히 살펴보면 정말 실망할 때가 많고 시험에 빠질 때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인생이란 원래부터 완벽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교회 와서 시험에 빠지고 분쟁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를 이곳에 불러 모아 주시고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함께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나갈 때, 교회는 세상 구원을 위해 받은 사명을 완수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도 말씀하시기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많은 열매를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15:5)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함께 거하고 포도나무 되신 주님께 붙어 있으면,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이고 우리가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많은 열매를 맺는 줄 믿습니다.

 

2. 오늘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는 대강절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아기 예수 그리스도로 오심을 기다리면서, 정작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왜 세상에 오시고, 왜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야만 했는지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많이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성탄절을 준비하고 맞이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죄와 사탄의 권세에 짓눌려 죄를 짓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고통하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메시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들은 이 사실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고, 우리를 고통하게 만드는 죄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적을 알지 못하고 왜 전쟁을 하는지 그 이유도 알지 못한다면, 이 싸움은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죄의 본질을 정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데, 그것은 "죄의 삯은 사망"(6:23)이라고 했습니다. 죄를 지으면 그 결과는 반드시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고 원하지 않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망, 죽음입니다.

어떤 시인들은 사망을 아름답게 묘사하면서 사람들을 죽음으로 유혹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문학적인 표현일 뿐이고, 인간은 본능적으로 사망을 두려워하는데 그 이유는 사망은 영원한 고통이기 때문입니다(2:24).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까? 생명을 유지하고 연장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희생과 수고를 강요당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죽음이 그런 고통을 쉬게 만들고 안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고통이 그것도 영원한 멸망의 고통이 죽음 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이것보다 더 두렵고 무서운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너나없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종교심을 가진 사람들은 심판을 두려워 하는 것입니다.

 

3.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물을 하나 주셨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믿음을 선물로 주셨다는 이 말은, 그 믿음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셨다는 것이고, 그를 믿고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만이 세상을 이길 수 있으며 죄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예외 없이 두 가지의 죄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원죄라는 것과 자범죄라는 것입니다.

원죄는 아담 이래로 우리 조상들이 지은 죄가 그 자손된 우리 안에 흐르고 있다는 것과, 우리가 태어나면서 죽는 순간까지 세상에서 스스로 짓는 자범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깨끗하고 의롭게 살아도 누구 한 사람, 이 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3:10)다고 하였으며, 그 아래로 보면, 온 세상 사람들이 다 한가지로 치우쳐 무익하고 선을 행하는 자도 없고 다 하나님과 원수로 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열심히 살고 선한 행실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도, 마귀는 그 죄를 보고 찾아와서 우리를 괴롭히고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4.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그런 고통에서 건져 주시고 영원한 안식과 행복을 주시기 위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모든 죄와 저주와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구원의 주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믿음으로 살기보다는 여전히 육체의 정욕을 위해 살고 있으며, 세상 사람들과 다름이 없이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런 문제를 지적하면서 우리에게 중요한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4:18)는 이 말씀입니다.

아이들은 놀기를 좋아하고 다른 아이들이 하는 것 다 따라 하고 싶고, 다른 아이들이 가지는 것을 나도 가져야 안심하고 만족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사기가 꺾이고 힘을 잃게 됩니다.

그렇다고 부모가 아이가 원하는대로 내버려두겠습니까?

지혜로운 부모는 아이들의 장래를 먼저 생각하고, 아이들의 인격과 삶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더 귀하고 소중한 것을 추구하고 그것을 위해서 희생하며 아이를 바른길로 인도하려고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고 아끼시는 하나님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 사람들처럼 눈에 보이는 것만 따라가면서 그것을 얻기 위해서 불법을 행하고, 죄를 짓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잠깐 있는 것을 위해서 살지 말고 지금은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지만, 영원한 영광을 위해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때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5. 골프선수 최경주는 한국인으로서 미국의 국제대회에서(PGA) 처음으로 우승하였는데, 그때 아내가 성경 구절을 써 주면서 외우라고 했는데, 지금까지 잘 외우던 성경구절이 필드에 나가서 경기하는 동안 전연 생각이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구절을 기억해내려고 애를 쓰다 보니 어느덧 15홀까지 왔는데, 고개를 들어 보니 성적순으로 기록된 현황판의 선수들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제일 위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경구절을 기억해내려고 애쓰다 보니, 우승의 중압감에서 벗어나 실수 없이 15번 홀까지 온 것입니다, 그때 성경 구절이 떠 올랐고, 그 구절을 외우고 의지하면서 나머지 18번 홀까지 무사히 마치고 우승컵을 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성에 의존하는 길과 믿음의 길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의 길에 대해서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2:4)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이 믿음으로 우리의 삶을 바라보고 그 믿음의 원리를 따라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와 동행하시며 목자가 되시고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계시된 말씀을 그대로 받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히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영웅들처럼 세상 방식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이 내게 하시는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6. 지금도 세상 사람들은 이성에 의존해 살다보니, 주님의 강림이 어디에 있으며(벧후3:4), 주의 약속은 더디다고(3:8-9)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제 정욕을 따라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도 헛된 일에 분주하고 그런 것에 생명을 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2:10절에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는 이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하고 있는 세례요한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태어났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시는 길을 예비하다가 그 사명이 다하고 난 후에, 그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있지 않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이미 말씀드린 대로 사망의 권세, 곧 죽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고 부활의 영광을 얻으셨고, 우리에게는 부활의 소망을 주셨고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17:5)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던지 어디에 있던지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 있을지라도, 말씀에 의지하여 오직 믿음을 따라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던지 기준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7. 요셉의 시대에, 애굽의 그 누구도 자신들에게 다가올 미래의 충격적인 사건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요셉만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애굽의 사람들은 전부 이성을 따르는 사람들이었지만, 요셉은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모세가 애굽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로 왕에서 부터 시작하여 그 누구도 애굽을 향해 하나님의 진노를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내일에 무슨 재앙이 애굽에 임할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모세는 알았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깨닫기 시작한 것은 10가지 재앙을 당한 이후 였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그들은 모든 것을 후회하게 되었고, 그 결과 겨우 남은 애굽의 마지막 힘인 온 군대를 홍해 바다에 수장시키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의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이 시대의 사람들과 그들의 자녀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성경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끊임없이 고통당하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에 오신 것입니다.

그는 사53장에 기록된대로, 우리를 위해 일부러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3)가 되셨습니다. 이유는 우리의 연약함과 고통을 맛보시고 참된 위로와 용서와 영원한 구원을 마음껏 베푸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 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에 넘쳐나기를 소원합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내 안에 있는 것(요한1서 4:12-16) 고영수 2023.12.09 1 163
다음글 슬픈 노래(신명기32:1-14) 고영수 2023.11.25 0 195

大阪中央教会 ⧧537-0023 大板市 東成區 玉淨 3-1-33 (06) 6973-5540, 6920-1569 www.chuo.co.kr / sirokita@gmail.com

Copyright © 오사카중앙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20
  • Total66,875
  •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