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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있는 것(요한1서 4:12-16)
고영수 2023-12-09 추천 1 댓글 0 조회 169
[성경본문] 요한Ⅰ서4:12-16 개역개정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내 안에 있는 것(요한14:12-16/2023.12.10.오전)

 

1. 기독교는 이론이나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에 입각한 체험의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우리의 삶 가운데서 늘 만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바로 이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 인간은 창조되었고, 그분의 뜻을 따라 우리가 쓰임을 받으며, 그분을 통하여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이 채워지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빠져 있을 때도 우리를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독생자를 보내셔서 모든 죄와 저주 가운데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당신의 자녀 삼아 오늘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우리를 향하신 이토록 놀라운 사랑을 베풀어주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기독교는 각자의 삶의 현장 속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교제하는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육안으로는 볼 수도 없고, 우리의 감각을 통하여서는 하나님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하다 보면, 많은 사람이 네가 믿는 하나님을 보여주면 믿겠다고 할 때, 안타깝게도 그들에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보여줄 수가 없습니다.

본문 12절에서도,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고 하였고, 20절에서는 아예 "보지 못하는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고 해서 하나님의 존재가 부정되거나 하나님의 실체가 의심받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사도바울은 롬1:20절에서,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수 있다고 하였고, 또한 우리 속에서도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우리 속에 분명히 보인다고(1:19)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어떤 철학이나 웅변이나 논리와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온 세상 사람들이 연합으로 하나님을 거부한다고 하여도,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에는 하나님의 존재뿐만이 아니라 그가 어떤 분이시며 우리를 향하신 그의 사랑과 은혜는 매일 매일 순간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렇다면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과 교제하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사도요한은 본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당연히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보면,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12)진다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종교가 인간의 오감을 통해 자신이 믿는 신의 존재를 찾고 있지만, 우리 기독교는 그런 방법으로 하나님을 찾을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우리는 온갖 더러운 죄로 오염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도리어 그가 베푸신 은혜 가운데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본문 16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출발점은 어디서 시작된 것입니까?

우리의 지식이나 특별한 능력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게 되었고, 또한 그 사랑을 의심 없이 믿을 수 있도록 성령께서 우리를 감동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고, 또한 내가 받은 그 사랑이 영원토록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지 못하면, 절대로 믿을 수 없으며 이 예배 자리에도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3. 그렇다면 우리를 향하신 이같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가 무엇입니까?

3:16절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한, 이 말씀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제자가 된 증거를 말씀하실 때, "너희가 서로 사랑"(13:35)함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믿음의 공동체가 유지되는 중요한 요소를 서로 사랑에 두고 있습니다.

이 사랑은 제일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그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 속에 부은바 되셨고, 이 사랑이 다시 우리 속에서부터 시작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이미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랑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고,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이, 그 사랑 안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는, 육체의 오감을 통해서 증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 사랑으로 서로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가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12절에서,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중대한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4.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올바른 반응을 말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하지 않고, 우리의서로 사랑함에 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거 유대교의 종교지도자들은 거룩한 예식을 포함해서 복잡한 종교적인 의무에만 모든 것을 집중했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이것이 종교적인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하게도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말았고, 사람들도 그들을 버리고 떠나고 말았습니다.

종교적인 열심은 대단했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부어주신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흘러넘치는 온갖 유행과 문명이 보여주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너나 없이 모든 사람은 참 사랑을 원하고 그 사랑을 통해서 인간다운 삶을 살기 원하고 있는데, 불행하게도 우리의 현실은 그런 사랑을 맛보고 간직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부산의 어느 교회의 셀 그룹을 이끄는 지도자의 간증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기 그룹에 들어온 젊은 자매가 한 사람이 있는데, 매사에 반항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녀가 어릴 적에 모친이 어느날 가출을 한 후 영영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 없이 아버지와 둘이서 살았는데, 이런 어려운 형편을 알고 주위 사람들은 그 자매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면서 인내했지만, 그녀의 잘못된 태도와 망상은 점점 심해졌고, 이제는 모두가 한계를 느끼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룹의 리더는 다시 한번 우리가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그 자매를 위해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그때 그의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너희는 어머니 없이 자란 어린아이의 마음을 아느냐?

엄마와 손잡고 가는 아이들을 홀로 바라만 보아야 하는 아이의 마음을 아느냐? 이제부터 네가 그의 어머니가 되라는 음성을 듣고, 그는 하나님 앞에 울며 회개했고, 정말 그녀의 어머니가 되기로 작정한 이후로 그 자매는 마음 문을 열기 시작했고 나날이 새롭게 변화되어 갔다고 했습니다.

 

5.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하는 것, 그것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러한 사랑은 내가 먼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은혜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 뿐 아니라, 그 위에 13절의 말씀처럼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분명히 그 누구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고 했으니 당연히 만진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우리처럼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심으로, 많은 사람이 그를 주목할 수 있었고, 그를 따르며 그를 만진 바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14:9)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지도 못하고 만질 수도 없지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진 사람은 하나님을 만졌고,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만찬을 나눈 자는 하나님의 식탁에 앉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육안으로는 하나님을 보지도 못하였고, 손으로 만지지도 못하였지만, 그런데도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통하여, 보고 만진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더 놀라운 하나님을 체험한 줄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내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그런 분임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언제 어디서든지 내 안에 계시고, 우리 모두를 사랑하고 계시며, 우리가 나누는 사랑 가운데에 살아계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6. 14:10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였느냐"고 하시면서, 계속해서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그의 일이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사도요한도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14:16)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거하시는 이 하나님은 나에게 눈이 없다고 해도 그분을 볼 수 있으며, 우리에게 손이 없다고 하여도 우리는 그분을 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니 눈으로 보는 것이나 손으로 만지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더 놀라운 체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이 사랑으로 믿음의 형제들과 이웃들에게 행한다면, 이 하나님의 사랑을 통하여 우리는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체험함으로, 그들도 자기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날마다 보며, 순간순간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줄 믿습니다.

 

7. 벌써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는데,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며 살았던 삶보다, 내가 중심이 되고 주님의 자리에 내가 올라서 섬김을 받으며 인정을 받으려 했던 순간이 더 많았습니다.

흘러간 과거는 되돌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과 나를 향해 찾아오는 모든 시간은 내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요 318절의 말씀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는 이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말로만 사랑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는 그런 희생을 통해서 참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셨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아낌없이 나타내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절이 우리에게는 은혜로운 시간이 되고, 그날까지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소중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고,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것처럼, 그런 희생과 섬김으로 우리가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면, 제일 먼저 이 교회부터 차고 넘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오사카부터 새로워지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인 일본 복음화와 세계선교는 내 안에 머무는 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완성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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