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누가복음6:20-26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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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21.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22.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25.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가난한 자의 복(누가복음6:20-26/2023.12.31.오전)
1.최근에 한국 뉴스 중에 가슴 아픈 사건 하나가 있었습니다.
결혼해서 아들 하나를 낳고 사는 28살 젊은이가 있는데, 무슨 이유인지 아내는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고, 그래서 이 남자가 혼자서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 생활을 했는데, 갑자기 병이 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어린아이도 돌보는 사람이 없어 죽고 말았는데, 1년 6개월된 아들과 아버지가 나란히 한 방에서 죽은 모습으로 발견이 된 것입니다.
둘 다 자살이나 타살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경찰이 이 사건을 조사하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이 죽은 어린아이와 아버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이라는 것입니다.
이 남자는 당연히 제 아들인 줄 알고 키웠는데, 남편도 아들도 버리고 집을 나간 부인에게 속아서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남의 아이를 돌보다가 육체적인 한계점이 와서 죽은 것입니다.
탁란(托卵)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새나 물고기나 곤총 중에서 종자(種子)가 다른 알을 몰래 둥지에 넣어 놓고 다른 어미가 대신 키우게 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뻐꾸기라고 합니다.
세상이 하도 무질서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하다 보니 이런 탁란 현상이 이제는 인간사회에도 점점 만연해 가고 있는 것 같아서 가슴이 답답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참 어떻게 이렇게 긴 365일을 견뎌내었는지,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갈수록 우리의 삶의 환경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 옛날과는 많이 달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렇게 사람이 변하다 보니 주어진 환경도 당연히 옛날과는 많이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고 인심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욕망인 것 같습니다.
누구나 잘 살아 보려고 노력하는 그런 욕망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물론 잘 산다는 의미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하는 잘 산다는 개념은 복을 받고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성공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2.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어떻습니까?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잘 살려고 하는 그런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우리에게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만 있다면, 우리의 필요를 잘 알고 그것을 때를 따라 채우는 손길은 내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고 하셨습니다.
물론 우리가 열심히 살아야겠지만, 우리가 먹고사는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게 되면, 그 다음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또 다른 고민이 하나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내게도 영원한 복이 되는지 깨달음이 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궁극적인 목적에 우리 인생의 초점을 맞추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마태복음 전체를 강해 하고 그중 일부분인 산상수훈을 출판한 지 벌써 9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이후로 과연 우리가 추구할 진정한 복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기에 대한 바른 답을 얻기 위해서는 주님이 말씀하시는 팔복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이 추구하던 복은 대부분 세상적인 소망, 현세적인 육신의 축복이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제국의 탄압과 타락한 정치, 종교가 만들어낸 가난에서 벗어나 메시야 왕국을 이루는 것이 그들의 꿈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천국에 대한 소망은 보이지 않았고, 이땅에서 메시야를 모시고 자기들만의 천국을 이루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그런 것은 복이 아니라고 하시며 그 대안으로 내미신 것이 바로 산상수훈의 팔복입니다.
3.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고 원하는 세상의 부귀공명을 다 누리는 사람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복과 인생의 성공은 수없이 불법을 행하고 많은 사람을 괴롭히고 속이고 빼앗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이 이 세상의 법칙입니다.
남의 연약함과 약점을 이용하지 않으면 성공의 길로 들어설 수 없는 곳이 바로 이 세상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얻은 성공과 부귀가 과연 그 사람에게 참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겠습니까?
며칠 전에는, 영화 기생충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한국 배우가 마약 문제에 연루되어 결국 자살로 인생을 마감했고, 남겨진 가족은 물론이고 그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들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소유하고도 그 마음에 천국이 없는 사람입니다.
롬1:18절 이하에 보면, 죄많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나오는데, 28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자들의 마음과 생각과 그 삶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악하고 더러운지 낱낱이 기록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그들에게 무슨 마음에 기쁨이 있으며, 무슨 감사가 있으며 행복이 있겠습니까?
잔니 베르사체(Gianni Versace)는 이탈리아 사람으로 세계 최고의 베르사체 브랜드를 창업한 사람으로 최고의 명성과 부를 쌓았습니다. 그러나 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서 필리핀 출신의 동성애자와 함께 하다가 50살에 그의 권총에 살해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신앙의 박해를 피해 땅굴을 파고 카타콤에 들어가 250년 동안 그곳에서 대대로 살면서 세상의 좋은 것 하나도 누려보지 못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영혼을 위해 믿음을 지키며 끝까지 인내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4.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지나 온 길에 무엇이 남아 있습니까?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으며,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주님의 말씀대로 천국에 소망을 둔 사람은 늘 천국만 준비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본문 21-22절에서 주님의 말씀 처럼 온갖 어려움을 당해도 복이 있는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만나고 얼마나 억울하고 분한 일을 당해도 다 넘어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는 주님이 계시고, 내 안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여 있기 때문에, 세상의 그 어떤 일이라도 내게 걸림돌이 되지 못하는 것은, 믿음으로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 안에 주님이 없고 천국 가는 길까지 막혀버린 사람은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어디에도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죽을 때도 죽지 않으려고 온갖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복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복은 세상이 가져다 주는 그런 복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주시는 영원하고 참된 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사람의 마음을 부요하게 만들고, 허영과 뜬구름을 잡게 만들면서 실상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5.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사람으로 그가 만드신 세상을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만물을 다스리는 이 권세가 어디서 왔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주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을 잡으려고, 세상의 주관자가 되려고 욕심을 낼 때, 손에 잡히는 것은 하나도 없었고, 도리어 세상에 사로 잡히는 죄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본문 25절의 말씀을 보면,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고 하였는데, 이 말씀은 지금 내가 배부른 것 같았는데 나중에 보니 전부 다 말라빠지고 영원한 배고픔에 빠지는 하나님의 심판인 저주가 왔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지금 잠깐 좋은 것 같아도 좋은 것은 순간적이고 그 뒤에는 영원한 고통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실 때 무엇을 보고 찾아오십니까? 우리의 심령입니다.
그것도 배부른 심령이 아니라 가난한 심령입니다.
여기서 가난한 마음이란 늘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는 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좋은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향해 감사의 문이 열려 있고, 나쁜 일을 만나도 그런 일에 흔들리지 않는 반석 위에 서 있는 마음으로 기뻐하고 찬송하면서 하늘에 소망을 두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늘 부한 마음, 교만하고 욕심 많고, 허영에 가득 찬 마음을 보고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속에는 세상과 공중권세 잡은 악한 마귀가 들어와 내 인생을 혼란에 빠지게 합니다.
6. 사람의 마음은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크고 넓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세상 것으로 채우려고 하면, 채울수록 더 공허하고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욕망에는 끝이 없고, 욕심은 패망할 때 까지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고 그의 은혜로 채우고자 하면, 채울수록 우리 마음은 겸손해지고 우리의 심령은 주님 사모하고 주님 의지하는 마음에 더욱 가난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따르는 목적이 각각이었습니다.
어떤 여자는 딸의 병을 고치려고 따라다녔기 때문에 딸이 고침을 받자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돈이 목적인 사람은 그 목적을 성취하려고 가롯유다처럼 자기의 스승인 예수님까지 팔았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주님을 끝까지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심령에 목이 마른 사람들입니다. 심령이 가난해서 그 가난함을 주님으로 채우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요6:68절에 보면,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다가 실망하거나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고 난 후에 그 예수님을 떠나는 모습을 보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도 가려느냐" 는 것입니다. 그때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하였습니다.
영생의 말씀, 생명의 능력의 말씀을 한 번 맛본 사람은 주님을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교회는 어떤 사람들이 찾아옵니까?
배고프면 엄마 찾는 어린아이처럼 교회도 심령이 배고픈 사람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심령에 목 마른 사람이 찾아오고, 주님 아니면 살 수 없는다는 그런 마음과 믿음을 가진 사람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비록 탕자처럼 잘못이 많아도, 회개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이 찾아오는 곳입니다. 그런 사람은 반드시 넘치는 은혜를 받고 육신도 잘되고 영혼도 사는 것입니다.
7.우리는 지금까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위해 살았습니까?
세상의 것을 채우고자 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것으로 다 채워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세상은 처음에는 좋은 것처럼 보이는 것을 가지고 옵니다.
그러나 조금만 지나면 그 좋아 보였던 것이 눈물의 씨앗이 되고, 영원한 고통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삼촌 아브라함과 달리 세상 보는 눈이 밝았습니다.
창13:10절에 보면,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롯은 "요단 온 들을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고 했습니다.
소돔을 택한 롯은 의기양양하게 나아갔지만, 그곳에 죄가 가득차 있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곧 임하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기다리는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롯이 떠난 뒤에도 광야 빈들을 택하고 늘 하나님을 모시고 살았습니다.
8.돈은 세상에서 꼭 필요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무서운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심령이 배가 불러서 교만해지고, 육체는 방탕하고, 정신은 타락하고, 그 영혼은 하나님의 집도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귀한 사명도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하나님이 주신 물질은 어떻게 사용해야 합니까?
내가 전하는 십자가의 복음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사용하고, 선한 일을 기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12:3) 말씀대로 영원한 기쁨과 영광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 가졌다 해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다 내려놓고 떠나야 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는 빈 마음, 가난한 심령이 되어서 그 안에 예수님과 그의 복음으로 채워서, 내 안에서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게 하고 주의 은혜로 충만한 삶을 살 때, 새해는 우리에게 기회가 되고 축복의 시간이 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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