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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가는 길(요한복음4:46-54)
고영수 2024-01-06 추천 0 댓글 0 조회 249
[성경본문] 요한복음4:46-54 개역개정

46.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47.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49.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51.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53.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54.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믿고 가는 길(요한복음4:46-54/2024.1.7.오전)

 

1.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이며 극작가인 손톤 와일드(Thorton niven wilder,1897-1975)가 쓴 우리 읍내(Our Town)라고 하는 플리쳐 상을 수상한 유명한 희극 작품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시골 작은 마을에 사는 조지 깁스와 에밀리 웹은 한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나 두 사람이 함께 결혼하고, 둘째 아이를 낳다가 에밀리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연극은 공동묘지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사건들 속에 숨겨진 절대적인 가치와 행복을 대부분의 사람은 알지 못한 채로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밀리는 예기치 못했던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때야 자신이 살아왔던 과거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했던 순간인지 깨닫게 되는 그런 내용입니다.

에밀리에게는 단 하루만 과거로 돌아가도록 기회가 주어졌고, 그녀는 12살의 어린 소녀 시절로 돌아갑니다. 그곳에서 만난 부모님의 너무 젊은 모습을 보고 놀랐고, 그때 그들과 함께 누렸던 삶이 얼마나 행복했던 순간들이었는지 알게 됩니다. 심지어 그녀가 소유했던 사소한 물건 하나하나까지 너무 정겨웠고 소중해 보였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누려왔던 그 삶의 순간순간들이 그렇게 아름답고 행복했지만, 그때는 모두가 바쁘고 생활에 쫓기며 살다 보니 그것이 행복한 순간인지조차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이 장소,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선물이고,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지 알지 못하다가 죽음에 이르러서야 그것을 깨닫고 에밀리는 눈물을 흘리며 끝을 맺게 됩니다.

살아 있는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을 맛본 후에야 알게 된 것입니다.

 

2. 정초부터 일본에는 큰 사건 두 가지가 일어났습니다. 지난 1일 오후 4시에 일어난 노도한토(能登半島)의 지진과, 2일에 하네다 공항에서 일어난 일본항공의 화재사건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과 가슴을 쓸어내리며 감사하는 마음이 교차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엄청난 재난과 대형 사고를 만나는 순간에도 나는 큰 어려움 없이 새해를 맞이하며 재난없이 평안히 거할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일본항공의 화재사건에서 379명 탑승자 전원이 무사히 탈출했지만, 만일에 이런 일이 서울에서 일어났다면 어떤 결과가 주어졌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불행한 소식, 우울한 뉴스가 연일 보도되는 가운데 기적을 일으킨 사람들의 행동이 매우 감동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미래가 생각처럼 그렇게 밝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문명은 나날이 발전하고 경제는 급성장하고, 생활 환경은 점점 좋아지고 있지만, 그에 반비례해서 세상은 갈수록 혼란스럽고 미래가 불안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흔들림 없이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다 함께 그 답을 얻으려 합니다.

 

3. 본문은 이전에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던 갈릴리의 가나에서 일어난 두 번째 기적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이 왕의 신하라고 했으니, 당시의 왕은 갈릴리 지역을 통치하던 분봉왕 헤롯 안디바로, 왕의 신하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 지위가 있는 사람같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찾아온 목적은, 사랑하는 아들이 병들어 죽어가기 때문에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이 병든 사람을 치유했다는 사실에 집중한다는 사실입니다.

한국 속담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수단이나 방법이야 어찌되었던지 목적하는 서울에만 도착하면 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요즘 한국 사회의 면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특정적인 집단 이외에는 모두 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말을 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면서, 너무 사람들이 획일화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성공을 위해, 내가 성취하려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치료하셨고, 기적을 일으키셨다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런 결과보다는 다른 것을 강조하고 계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믿음입니다.

 

4. 본문 48절을 보면,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니라" 고 하셨는데, 이 말씀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이 세대가 믿음이 전연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베푸시는 능력과 기적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믿음이란 그런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해서 믿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보여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50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는 이 말씀과 그 뒤에 나오는 왕의 신하의 태도,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갔" 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믿기 어려운 상황,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만났을 때 믿음의 사람이라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믿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믿고 갔더니 병들어 죽어가던 아들이 살아났고, 그 결과 53절에 보니, 온 가족이 예수를 믿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아들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에는 모든 것이 다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고, 세상 모든 것이 다 쓸데없는 것만 같았는데, 주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했더니 아들이 병들어 죽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고, 이 어려움을 통해 온 가족이 믿고 구원받았으니 결국에는 잘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지금 당장은 어려운 일을 만나 낙심하고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도, 말씀을 믿고 순종해서 나아가면, 그 절망적인 상황이 도리어 우리에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아들이 죽게 된 것은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병든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했을 것이고, 그러나 아무런 효험도 없이 골든타임을 놓치고 아들의 죽음이 눈앞에 닥쳐온 것입니다.

세상의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고 힘을 썼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고 최대의 위기를 만나고 보니, 그제서야 예수님을 찾았던 것입니다.

 

5. 15장의 탕자는 새사람이 되어서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죽게 되었으니, 더이상 소망이 없으니 할 수 없어서 살길을 찾아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아들이 돌아온 것만도 감사하고 기뻐한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돌아가기만 하면 우리를 십자가 보혈도 씻어 주시고, 영원한 자녀로 삼아 주시는 분입니다.

세상에서는 최고 일류를 뽑아서 쓸모있는 일군으로 만들기 위해 시험과 면접과 훈련 과정을 거쳐서 인재를 선발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의 순종하는 모습을 보십니다.

사실 믿음의 세계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세계입니다.

왜냐하면,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고칠 수 없는 사람을 새롭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사람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변한 척 하고 인내심을 발휘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자신에게 속아서 자신은 변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건이 나면 그 사람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데, 사람은 어려운 일을 만나면 본색이 드러난 것 뿐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말하기를,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내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13:23) 고 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세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변할 수 없는 사람도, 변해서는 안되는 사람도, 고칠 수 없는 사람도 새롭게 만드는 것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6. 우리가 듣고 싶은 것은 본문 51절의 말씀처럼 당신의 아들이 살았다는 소식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죽어가는 아이가 갑자기 살아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보면 주님이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무조건 고쳐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여기에 대하여 몇 가지의 예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5:17절 이하에 보면, 한 중풍병자를 고치기 위해 그의 주변 사람들이 병자를 데리고 예수님께 가까이 가려고 해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가까이 다가갈 수 없게 되자, 병자를 침상에 뉘어 놓고, 그 침상을 메고 올라가 그 지붕을 뜯고 예수님 앞으로 그 침상을 달아 내렸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이런 광경을 보시고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20)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보신 것은 그들의 믿음이었습니다.

7장에도 보면, 가버나움의 백부장이 자기 종의 병든 것을 보고 고치려고 예수님을 찾아갔고, 예수님은 그의 하인을 고쳐주시기 위해 집으로 가자고 했을 때, 이 백부장이 한 말은 "내 집에 들오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6-7)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계시던 예수님은,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9)다고 했습니다. 여기서도 예수님이 보신 것은 그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께 보여드릴 것이 있다면, 단 한 가지 우리의 믿음뿐입니다.

 

7. 9:41절에 보면, 귀신들린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와서 고쳐 달라고 했을 때, 그들이 감당하지 못하자 예수님에게 와서 부탁을 하자,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려오라" 고 하시면서, 단번에 귀신을 쫓아 내셨습니다.

이 사실을 마17장에서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기를, 왜 우리는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냐고 물었고, 예수님은 겨자씨 한 알의 믿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패역하다는 말의 의미는, 인간의 도리를 벗어나고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 원리를 따라 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무엇이고 믿음으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믿음이라는 단어를 히브리어로 보면, 에무나 하고 하는데, 그 뜻은 확고하다, 신뢰하다, 안전, 정직, 진리, 성실, 평안, 지속 지탱, 지지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란 하나님에 대한 신뢰요 그를 향한 흔들리지 않는 태도를 말합니다. 이로 인하여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평안을 얻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흔들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이 믿음을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사도바울은 여기에 대한 답으로, 10:17절에서,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자라고 든든히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평안을 잃어버렸을 때에도 말씀을 들음으로 잃어버린 평안이 회복되고, 말씀에 순종함으로 우리의 삶이 힘을 얻고 새로워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앞으로 나아가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8. 사도바울은 고후13:5절에서, "너희가 믿음이 있는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계속해서 너희 안에 그리스도가 없으면 너희는 버림 당한 자라는 것입니다.

나는 믿음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믿음이 가출하고 실종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시로 내게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시험해 보고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으면 온 천하에서도 우리의 믿음이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1:6).

11장에는 믿음의 영웅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38절에 보면, 이 믿음의 사람들의 정체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믿음으로 받고, 믿음으로 드리고, 믿음으로 떠나고, 믿음으로 이기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믿을 수 없는 것들 뿐입니다. 모든 것이 불신이고 모든 것이 불법천지입니다.

그래서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세상이 어둡고 고통스럽고 두렵고 힘들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이 믿음은 우리가 영원히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2024년은 본문의 말씀처럼 주님이 하신 말씀을 믿고 갈 때, 우리는 믿음으로 승리하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인생에 가장 복된 한 해가 되는 줄 믿습니다.

믿고 나아가면, 내가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위해 일하시고, 주님이 우리 인생에 복을 주시고 승리하도록 도우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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