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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발(로마서10:13-15)
고영수 2024-04-13 추천 0 댓글 0 조회 48
[성경본문] 로마서10:13-15 개역개정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아름다운 발(로마서10:13-15/2024.4.14.오전)

 

1. 일본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다 야스나리(川端康成,1899-1972)는 니이가타껜의 유자와온천(新潟県南魚沼郡湯沢温泉)을 모델로 해서 설국을 썼는데, 설국을 발표할 그즈음에 그는 한센병 수용소에 수용된 어느 청년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 청년은 병에 걸려 고통하는 자신의 내면에 대한 갈등을 계속해서 기록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이 원고를 세상에 발표해도 되는지 어떤지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야스나리에게 이 원고를 보여 주었고, 야스나리는 그 내용을 읽어보고 무척 감동 받은 나머지 문학계라는 잡지에 발표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호조 다미오(北条民雄, 1914-1937)의 생명의 첫날밤(いのちの初夜)으로 재판에 재판을 거듭하면서 베스트 셀러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다미오와의 이런 인연으로 인해 가와바다 야스나리는 오끼나와에 강연을 갔다가 한센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이 수용된 시설을 찾아갔고, 그곳에서 15살의 이하 도시오(伊波敏男)를 만났는데, 이하 도시오는 같은 질병을 앓았던 호조 다미오의 작품을 읽으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스나리는 도시오에게 작가의 꿈을 가지고 많이 기록하고 많이 축적해 두라고 하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책이 필요하다고 하였고 한 달 후에 많은 책을 보내왔다고 했습니다.

가와바다 야스나리는 글을 통해서만 감동을 준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병자들을 찾아 그들에게 꿈을 심어 주었고, 당시에는 한센병을 앓는 사람을 만나려면 마스크를 끼고 소독을 하고 장화를 신고 멀리 떨어져서 대화를 해야 했는데, 그는 와이셔츠 차림 그대로 그들을 만났고, 손을 잡아 주며 침이 튀길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때로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하 도시오는 자신이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같은 야스나리와의 만남이 그 시작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2.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에게도 이런 만남이 너무 중요한 것은, 남들이 가질 수 없는 너무 중요한 것을 우리가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십자가 구원의 복음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 믿음입니다.

세상에서 무엇을 주고도 얻을 수 없으며, 무엇을 가지고도 바꿀 수 없는 그런 믿음을 우리는 선물로 받았는데, 여기에 대해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없다면 어찌 들을 수 있으며, 보내심을 받은 전도자가 없다면 누가 찾아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기 때문에, 그 형상의 원형이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만 생명의 참된 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조건을 보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쳤"(28:31)다고 하였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인생이 아무리 실력이 있고 권력을 가지거나 재물을 쌓아 놓아도 하나님 만나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고 감사와 기쁨을 맛볼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이 만드신 에덴동산에서 온갖 것을 다 누렸지만, 한번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자 순식간에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재물이 많고 권력이 있고 실력이 있으면 사람들은 따르고 그를 부러워하지만, 마귀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예를 들어보면, 우리가 동물원에 가서 여러 종류의 동물들을 관찰하면서 즐겁게 지내지만, 우리에 갇힌 동물이 우리를 볼 때 어떻게 보는지 한 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동물들은 자기들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의 계급이나 사회적인 지위나 쌓아 놓은 재물이나 입은 옷이나 장식품을 보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들과 똑같은 동물 중의 하나로만 볼 뿐입니다.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에는 그 사람 안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있느냐 없느냐를 보시고, 마귀 또한 우리를 볼 때 그 사람 안에 죄가 있느냐 없느냐를 봅니다.

 

3. 그래서 믿음으로 의로워진 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보호해 주시지만. 죄가 있는 사람은 마귀가 따라다니면서 매일 죗값을 내놓으라고 공격하기 때문에 평안이 없고, 죄가 주는 고통 때문에 병들고 불안하고 두렵고 근심이 가득한 삶을 살다가 마지막에는 심판을 받아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의심이 많고 무지한 것이 문제입니다.

로마서를 다시 시작하면서 강조하는 것은, 이 로마서의 핵심은 하나님의 의에 있습니다.

1:17절에 보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는 이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의란 원래는 범죄한 인간을 심판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로움입니다. 그렇다면 죄 있는 인간은 다 망해야 하고 영원토록 고통당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인간이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누구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죄 문제를 해결하도록 한 가지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선물인 믿음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4:3절에 보면,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원래는 우상숭배자였지만 자신을 찾아오신 그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믿음을 통해서 의롭게 되었고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문 13절에서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는 이것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누구든지는 구원받을 대상에 제한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고, 주의 이름은 우리의 죄를 지고 대신 십자가에서 그 죄값을 치루어 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고, 그 이름을 부른다는 이것은 우리의 입술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심하지 말고, 우리의 입으로 베드로처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고백할 때, 죄와 마귀는 물러가고 하나님의 의로운 자녀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4. 16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그곳에서 귀신들린 채로 점을 치는 여자를 고쳐주었다가 귀신들린 여자의 주인에게 고발당해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억울했지만, 감옥 속에서도 기도하고 찬송하였더니 옥문이 열리고 죄수들의 쇠고랑이 다 풀렸고, 이 광경을 본 간수는 죄수들이 다 도망한 줄 알고 자결을 하려고 할 때, 바울이 한 사람도 도망가지 않았으니 자결을 멈추라고 하였고, 이 모든 것을 알게 된 간수가 바울 앞에 엎드려 한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16:30) 하였고, 바울은 대답하기를,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16:31) 고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그의 온 가족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고 그 증거로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인 믿음으로 영생을 얻고 의로운 자가 되는 줄 믿습니다.

원래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의는 완전한 의로움이었고, 인간으로서 완전한 의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므로,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고, 그를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완벽한 의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우리는 완벽하고 영원한 의를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에 결단하면 지금 곧 구원을 얻고 의로운 자가 됩니다.

구약시대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를 이루기 위해서 모든 사람이 늘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리고, 행위로 의로운 자가 되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아무도 의로운 자가 되지 못했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서 신음하며 고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믿음이란 롬10:10절에 기록된대로,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 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5.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소유한 전도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 전도자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을 얻을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됨을 알게 해 주셨고, 우리는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게 되었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눅23장에 나오는 십자가의 한편의 구원받은 강도처럼, 제 생명만 구원받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고전3:9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복음의 동역자로서 온 세상이 믿고 구원받는 이 일에 쓰임을 받아서 영원한 영광과 상급을 얻는 복음의 사명자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이곳에 보내셨고, 우리를 이곳에서 사명자로 세워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희생하고, 무엇보다도 십자가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이 일에 충성된 일꾼으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토록 축복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전하는 자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복음도 들을 수 없고, 귀를 막고 듣지 않으면 믿을 수 없고, 믿지 않으면 입으로 고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이 아름답다고 했는데, 원래 발은 사람의 몸 가운데서 가장 볼품이 없고 천대받는 존재이기 때문에 외형적으로는 아름답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발이 아름답다고 한 것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자의 한 영혼을 사랑하는 그 뜨거운 마음과 인격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발레를 하는 사람들의 발이 고된 훈련과 공연을 통해 상처입고 처참하게 망가졌지만, 그런 발의 희생 덕분에 만인이 감탐을 하는 생명력이 담긴 예술이 살아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결코 목회자나 선교사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모든 성도,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받은 절대적인 사명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모든 권세를 주셨고, 가서 모든 민족으로 구원받도록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겠다고(28:18-20) 약속해 주셨습니다.

복음을 위해 열심히 달려가는 그런 발을 주님은 아름답다고 하셨고, 그런 발을 축복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6. 우리가 믿는 이 십자가 복음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있고, 이 보혈의 은혜를 전달하는 것은 먼저 믿는 우리의 사명이요 하나님이 우리를 그분의 동역자라 부르시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고전3:9).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 수 있도록, 누구든지 그 이름에 힘입어 의로운 자가 되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하나님은 우리를 복음의 사명자로 부르셨습니다.

지금도 바깥에는 이 구원의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가는 자가 하루에도 십육만, 일년에 오천구백만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말씀은 복음을 전하는 자가 없는 이 땅에 전도자로 세우셨고,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자가 없는 이곳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사명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전해도 듣는 자가 없고, 들어도 구원에 이르는 자가 없으므로, 복음을 전하다가 낙심하기 쉽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롬11장에 보면, 아합 왕 때, 왕후 이세벨이 많은 선지자들을 잡아 죽이고 제단도 다 헐고 무너뜨렸지만, 하나님은 선지자 엘리야도 알지 못하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믿음의 사람 7천 명을 남겨 두었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런데도 깨닫지 못하는 엘리야가 하나님께 구한 것이 무엇입니까?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나이다"(왕상19:4)고 하면서 자기자신의 무능력을 탓하며 죽기를 자청했습니다.

그런 엘리야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19:18절에 보니,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고 하였습니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뛰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대에 하나님이 숨겨 놓으신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칠천 명을 찾아내는 것이 우리가 받은 사명인 줄 믿습니다.

 

7. 문제는 지금 우리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복음을 전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어느 장로님의 사업장에 무당 딸이 3년 동안 일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고 있었는데도 아무도 그녀에게 전도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어느 권사님 가게에도 불신자가 2년 동안 출근하는데도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말씀이 살아서 아무리 큰 역사를 일으켜도 지금 우리가 이 복음을 증거하지 않으면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먼저 믿고 나가서 증거하면 반드시 구원의 역사는 이곳에서도 일어나는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전하는 이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롬10:9절에 기록된대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였으니, 전도의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찾아가서 증거만 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좋은 소식, 즉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이 아름답다고 했는데,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주님은 무엇을 약속하셨습니까?

첫째로, 가족을 구원해 주십니다. 16:31의 말씀대로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습니다.

내가 바깥에 있는 영혼을 사랑하여 전도하면, 가족 구원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법입니다.

둘째로, 영원한 상급이 있습니다. 12:3절에 보면, "많은 사람을 옳은대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고 하였고, 22:12절에서 주님이 직접,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대로 갚아 주리라" 고 약속하셨습니다.

셋째로, 이 세상에서도 필요한 모든 것을 풍성하게 채워 주십니다. 6:38절의 말씀대로 누르고 흔들어 채워 주시며, 10:30절의 말씀대로 백배의 축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넷째로,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도록 매일 새 힘과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10:17절에 보면, 예수님이 파송한 70인 전도자들이 돌아와서 하는 말이,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담대해지고, 어떤 난관과 고난도 물리치고 승리하는 줄 믿습니다.

다섯째로, 늘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28:20절의 말씀대로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고 하셨습니다.

 

8. 전도자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이 자신의 마음을 우리에게 부어 주심으로 우리도 한 영혼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우리의 일생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쓰임 받도록 축복해 주신 그 은혜 안에서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이 곧 우리의 발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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