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로마서11:16-24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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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19.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20.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23.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24.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제공: 대한성서공회
돌감람나무 인생(로마서11:16-24/2024.6.2.오전)
1. 우리가 내 육체를 위해서는 매일 관심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 관리하지만, 정작 우리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마음이나 생각에 대해서는 얼마나 관심이 있으며, 그것의 소중함을 알고 귀하게 관리하는 것에는 얼마나 관심을 쏟고 있습니까?
사도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 (빌2:5)이라고 하였고, 또한 롬12:2절에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매 주일 만나고 있는 로마서의 말씀에서 이 마음이라는 단어가 3, 4장을 제외하고 거의 매장마다 나오고 있으며, 11장 20절과 34절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마음이 우리 인생과 영혼의 양식에 관해서 너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이 마음이 생각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먼저 잘못된 마음을 살펴보면 악하고 강퍅한 마음이나 사악하고 부패하는 마음, 의심하거나 어리석은 마음, 또는 근심하거나 상실한 마음이 있는데 이런 마음은 하나님의 진노, 즉 죄악에 대한 심판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겸손하거나 순결한 마음, 긍휼히 여기는 마음, 지혜로운 마음, 자원하는 마음이나 새 마음입니다. 마음이라도 다 똑같은 마음이 아니지만,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이고, 우리 안에 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제일 어려운 일 중의 하나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 번 분노가 치솟아 오르면 감당할 수 없는 악한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한 번 어리석음에 빠져들면 그것을 깨닫고 어리석음에서 빠져나오기까지는 많은 희생을 치르기도 합니다.
2. 더 큰 문제는 잘못되고 부정적인 마음은 습관이 되고 일상이 되어버리면, 이전으로 되돌아갈 길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죄를 품은 마음은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중심에서 일어나는 부패한 마음은 다툼과 정욕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래서 로마서 8:7절에 보면,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고 하였으니, 사람의 마음은 육체를 지배하고, 육체는 하나님과 원수 되는 길을 걷게 만드는 것입니다.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로 알려진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는 말하기를, 우리 시대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은 사람이 마음을 바꿈으로 생활을 바꿀 수 있는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으며, 바뀌고 새로워진 마음이 우리 인생을 새롭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 마음먹기에 따라 우리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사람의 생활은 성격을 바꾸고 성격은 사람의 생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마음은 무엇이고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까?
먼저 예수님의 마음에 관해서는,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 (빌2:7)다는 이 말씀이 예수님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로서 절대적인 영광의 소유자였지만,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 모든 영광을 버리고, 죄로 인하여 만물 중에 가장 천하게 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를 죄와 저주와 영원한 죽음 가운데서 건지기 위해 자신을 종처럼 낮추어 섬기며 사랑하며 사셨던 바로 이 마음을 우리 안에 품으라는 것입니다.
3. 만일 우리가 유대인이라면, 오랜 세월을 하나님만 섬기면서 여호와의 말씀을 종교적 유산과 정치 경제 문화의 근본으로 삼아 왔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여 불순종, 불신앙이라는 이유로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식이나 경험도 없이 우상숭배에 찌든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구원을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총애를 입고 살아간다면 이런 사실을 쉽게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집에 친 아들이 아버지를 거역하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제멋대로 살다보니 집에서 쫓겨났고, 그 빈자리를 근본도 모르는 범죄자에 마약에 찌들어 다 죽어가는 사람을 데려다 아들로 삼고, 지금까지 친아들이 누리던 모든 권한과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면, 이 사실을 보고 있는 친아들은 얼마나 속이 터지고 분하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오늘 본문에서 친아들이 아니라 양자로 데려온 아들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쓰레기 같은 인생을 아들로 삼아 준 그 은혜가 늘 감사하고 눈물이 났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이 은혜가 일상이 되고 보니 어느새 그 마음이 교만으로 차고 넘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효로 쫓겨난 아들을 무시하고 멸시하면서 안하무인으로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고 더 못된 놈이 되어 악을 행한다면, 이런 양아들을 둔 아버지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여기에 대해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본문 21절에 보니. "원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리라" 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가장 많이 염려하고 있었던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절대로 마음이 교만해서도 안 되고, 원가지였던 이스라엘을 멸시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4.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받은 우리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본문 17절에 보니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 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된 교회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감람나무는 산이나 들에서 자라는 야생 올리브를 말합니다.
여기서 올리브 기름을 짜내는데, 돌감람나무는 품종이나 생긴 것은 비슷하지만, 열매에서 향기가 나지 않고, 기름도 별로 없으므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참감람나무는 삼십 수년을 정성을 다해 키우지만, 돌감람나무는 초막절 행사 등을 위해서 열매를 기다릴 필요도 없이 마구 베어 초막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 땔감이나 지팡이를 만들 때도 베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유대인들보다 우월하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은 버리시고 우리를 택하셨고, 그들이 누리던 특권과 영광은 이제 내 것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과거 유대인들이 빠졌던 그 오류에 우리도 함께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죄의 역사요 교만한 마음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도 바리새인들처럼 독선적이고 교만하고 어리석어서 제 인생을 자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데, 이런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고린도교회에서 나타났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나중에는 그리스도파까지 생겨나서 목숨을 걸고 교회 안에서 서로 싸웠습니다. 이씨조선의 사색당파와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분쟁이 어디서 시작되었습니까? 교만한 마음에서 온 것입니다.
나만 정통보수이고, 다른 것은 다 이단이고 사이비고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불행하게도 한국교회는 여기에 빠져서 방향을 잃은채 고통하고 있습니다.
5. 우리는 아무리 많은 은혜를 받고 아무리 큰 능력을 일으키고 기도응답을 받아도 공로나 자랑이 없는 인생들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지나치도록 무지했던 우리가 아무런 공로도 없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것은 오직 믿음에 의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은총을 믿고 그를 의지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지 우리의 공로나 우리의 자랑이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현주소는 높은 마음과 교만한 마음에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우리에게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사도바울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18절에 보니 첫째는 자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20절에 보니 높은 마음을 품지 말라고 했고, 셋째는 두려운 마음을 가지라 했습니다.
아버지가 친 아들을 버린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만한 마음에 십자가의 은혜를 거부하고 자기 공로를 앞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새로 입양된 양아들이 같은 잘못된 마음과 같은 잘못된 행동을 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불순종의 삶을 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연히 친아들처럼 버림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까지 기억할 것은 나는 돌감람나무로 아무 쓸모도 없는 인생이었지만,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다는 것과, 친아들인 이스라엘도 버림을 당한 것처럼 우리도 잘못하면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당할 수 있다는 이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아무런 공로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믿음을 보시고 자녀로 삼아 주셨기 때문에 그러므로 우리가 지킬 것은 오직 십자가만 붙드는 믿음뿐입니다.
6. 안병욱교수(1920-2013)는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숭실대학을 중심으로 교수 생활을 하면서, 국민훈장 모란장 등의 훈장과 많은 상을 받으면서 대한민국의 정신세계를 이끌어 온 분인데, 그가 사람의 마음을 다섯 가지 질로 구분했습니다.
첫째는 악질(惡質)입니다. 살인범, 강도, 유괴범 같이 잔인한 존재들입니다.
둘째는 저질(低質)입니다. 약속을 어기고, 거짓말 잘하고, 부정부패하며 남을 비방하기 좋아하고, 비협조적이고 불신을 조장하는 존재들입니다. 피해만 끼치고 전연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범질(凡質)입니다.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은 사람으로, 사명감도 없고 책임의식 같은 것도 없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넷째는 양질(良質)입니다. 협력하고 예절이 바르고 교양도 있고, 감사할 줄 알며 선의를 베풀기를 좋아하고, 법이 없어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섯째는 특질(特質)입니다. 소위 백년에, 천년에 한 번 나오는 인류의 영원한 스승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인격이나 지혜, 통솔력, 용기와 도덕에서 특별히 뛰어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양육할 때, 인성교육과 신앙교육은 너무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양심에 화인을 맞은 자녀가 되고, 나라와 민족은 안중에도 없는 반사회적인 인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5:13-14)고 하시면서,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5:16)고 하셨습니다.
7. 본문의 핵심은 20절에 있습니다. "그들은 믿지 아니함으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그렇다면 이 믿음은 어디서 왔습니까? 엡2:8절에 보니,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고 했습니다.
믿음은 우리의 행위나 자랑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요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공통적인 특징은,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이 없다는 것과 은혜를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이 사라진 것입니다.
주위를 보면, 다들 그렇게 살고 그렇게 믿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주님은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을 마지막 날까지 지키기 위해서는 사도바울의 권면을 따라, 첫째로 인생을 자랑하지 않고, 둘째로 교만하여 높은데 마음을 품지 말고, 셋째로 도리어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으로 하늘나라를 바라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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