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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드리는 것(로마서12:1-3)
고영수 2024-06-22 추천 0 댓글 0 조회 98
[성경본문] 로마서12:1-3 개역개정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몸을 드리는 것(로마서12:1-3/2024.6.23.오전)

 

1. 인류 역사의 철학자들과 지혜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야기는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스포츠선수들이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놓고 먼저 생각하고 그 생각을 따라 행동을 바꾸고 생활을 바꾸면 우승을 바라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신라 시대 때, 17대 내물왕의 후손으로서 이찬이라는 벼슬을 하는 김경신(金敬信)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가 어느 날 꿈에 자신이 관을 벗고 낡은 삿갓을 쓰고 열두 줄의 가야금을 껴안고 천관사(天官寺)의 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점쟁이에게 꿈 해석을 부탁했더니, 관을 벗었으니 벼슬에서 쫓겨날 것이고 열두 줄 가야금을 껴안은 것은 죄인이 되어 형구를 쓰고, 샘 속에 들었으니 옥에 갇힐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소리를 듣고 김경신은 식음을 전폐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귀한 손님이 찾아와서 그의 꿈을 듣고는 달리 해몽을 했다고 합니다.

관을 벗은 것은 자신보다 더 높은 사람이 없어진다는 것이고, 열두 줄 가야금은 구슬로 늘어진 왕관을 쓸 징조요, 샘에 들어간 것은 머지않아 왕궁에 들어갈 징조라고 했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김경신은 그때 왕위를 노리고 있던 김양상을 도와 그를 왕으로 추대하였고, 그 공로로 각간(角干)이라는 최고의 벼슬을 얻고, 김양상은 신라 37대왕 선덕왕(宣德王)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 선덕왕이 후손이 없이 죽자 그의 조카가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는데, 마침 북천(北川)의 물이 불어나서 김주원의 입궐이 늦어지자 그 틈을 타서 귀족들을 모아 회의를 열어 대통을 이어받아 그가 신라의 38대 원성왕(元聖王)이 되었다고 합니다.

꿈의 해석에 따라 인생의 가는 길이 하늘과 땅 차이가 되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에 변화가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창세기의 요셉의 꿈도 마찬가지입니다.

월터 디즈니는 말하기를, 만약 당신이 꿈을 꿀 수 있다면 그것을 이룰 수 있다.

언제나 기억하라 이 모든 것이 꿈과 한 마리의 쥐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도 보면, 승자의 주머니 속에는 꿈이 있고 패자의 주머니 속에는 욕심이 있다고 했습니다.

 

2.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 우리 몸을 드리는 것에 대한 것이지만, 더 깊이 묵상해 보면 이 내용이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우리 몸을 드린다는 것은 내 생각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결코 성취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2절에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라고 하였고, 3절에 가서도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고 했습니다.

한 구절에 생각이라는 단어가 3번씩이나 반복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의 핵심은 하나님의 의에 대한 것이고 이 의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나타났고, 이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선물로 값없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이신칭의(以信稱義)라고 하며, 이것이 로마서의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12장부터 15장까지는 우리가 선물로 받은 이 하나님의 의를 우리의 삶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나타내라는 내용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의가 성도들의 순종적인 삶을 통해서 이 세상에 드러내야 하고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서두에서도 이 일을 위해서 너희 몸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믿음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고민이고 문제점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우리 몸이 믿음대로 살지 못하게 만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3. 우리는 두 가지 신분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첫째는 천국 시민의 신분을 가지고 사는 것과 둘째는 이 땅의 시민으로서 감당해야 할 의무를 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향해서 우리는 그리스도 생명의 빛과 향기를 발산하면서, 또 소금처럼 사람들이 기뻐할 만한 그런 맛을 내면서 삶을 살아가고, 동시에 세상과는 구분되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성도의 삶은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신 후에 또다시 선물로 주신 것이 은사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124절 이하에 자세히 기록되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은 내 힘으로는 감당이 안 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에게 은사라는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요즘 꽃을 찾아 나는 나비를 보는데 하나님이 나비에게 날개를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눈이 부시도록 밝은 그 날개를 펼쳐서 꽃을 찾아 가고 하늘을 날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아름다운 날개를 펼치고 꽃을 찾아 창공을 자유롭게 나는 나비를 보면 정말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런데 나비가 하늘을 날 생각은 안 하고 땅바닥에 애벌레처럼 기어다닌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처럼 추하게 보이는 것은 없을 것이고, 날개는 금세 더러워지고 부서져서 이제는 날고 싶어도 날아다닐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기어 다니는 나비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저와 여러분을 향해 오늘 본문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 몸을 하나님께 드리라 하였고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인 예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생각하기를 영적인 예배는 간절한 마음을 쏟으면 된다고 여겼는데, 분문은 우리의 몸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4. 그렇다면 여기서 몸을 드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것은 과거에 죄악에 사로잡혀 노예처럼 살았던 우리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엡2장에서 잘 밝히고 있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본질상 진노의 자녀"(2:3)였습니다. 도무지 변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과 행하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도바울은 우리 몸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면 어떻게 됩니까?

고전6:19절에 보니,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이 되고, 그래서 20절에 보면,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본문 1절에 하나님께 우리 몸을 드릴 때 산 제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기로는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모든 제사의 제물은 짐승을 잡아서 드렸습니다.

다시 말해서 구약시대의 제사제물은 다 죽은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도 마찬가지로 십자가에 죽임을 당함으로 구속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하였고, 이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인 예배라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 있는 제물, 즉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몸을 나에게 달라는 것입니다.

내 몸을 내가 주인이 되어 내 마음대로 살때에는 죄의 도구가 되었지만, 이 몸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올려드리면, 하나님은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로 사용해 주시는 것입니다. 

내 힘과 의지로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살 수 없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될 때에는 그분의 뜻대로 쓰임을 받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에게는 영광이고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5.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에 맞춰서 변화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성경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5:38)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많은 것을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전부 껍데기만 바뀌었습니다.

그야말로 유행을 따라 계절을 따라 옷만 바꾸어 입을 뿐이지 속은 옛날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세간에서 하는 소리가 사람을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새 옷으로 갈아입으면 기분이 새로워지고 새사람이 된 것처럼 느끼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옛사람 그대로입니다.

목회자들이 제일 힘들어하고 실망하는 부분이 사람이 변하지 않는 바로 이것입니다.

차라리 우리를 죽은 제물로 드리면 이런 문제로 고민할 필요가 없는데 하나님은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유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인간은 감정이 있고 인격이 있고 판단할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 앞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면서 바른 선택을 하고 바른길을 걷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세상은 반대로 가고 있으니 그래서 믿음을 지키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제가 오늘 오후에는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으며, 믿음의 생활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6. 신앙생활 하면서 제일 힘들고 어려운 것은 변화가 안 되는 것입니다.

육신의 쓴 뿌리가 우리의 생각과 습관과 모든 환경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했습니다(고전15:31).

그 구체적인 방법을 사도바울은 갈2:20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우리 몸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변화되어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2절에 가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합니까?

현대문명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노예로 만들고 있습니다. 과학은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 주지만 그 대신에 우리가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을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AI(인공지능)Chat GPT(대화하는 인공지능)는 인간에게 생각하는 것을 멈추게 만들고 판단하는 것을 못하게 만듭니다. 인간의 의식을 사로잡고 무능한 존재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조금만 생각하면 세상이 편리한 것이 아니라 너무 불편하고 무섭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19년에 공개된 인공지능인 GPT-2는 유치원생의 수준이었고, 2020년의 GPT-3는 초등학생 수준이었고, 2023년의 GPT-4는 똑똑한 고등학생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지난 21일에 정기주주총회에서 말하기를, AI는 앞으로 10년 후면, 인간보다 1만 배나 더 똑똑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진화해 가는 인공지능을 인간이 어떻게 관리할 수 있으며, 인공지능으로 지배를 받는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너희 몸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은 그것을 따르거나 지배당하거나 타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7. 예수님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자기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셨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부활의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급변하는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려면 우리 자신을 내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된 삶을 살 수 있으며, 그래야 진정한 예배자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내 것을 가지고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는 있지만, 내 자신을 일단 하나님의 것으로 드리게 되면 그때부터 내 뜻대로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내 것이라 여기고 함부로 사용하기 때문에 육체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 드린 것, 하나님께 드려진 것은 더 이상 내 마음대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살펴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4:23절에 보면,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몸을 드린다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을 드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이런 우리의 몸을 받으셔서 당신의 영광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몸을 주께 드리면, 주님은 살아있는 제물인 우리를 통해 당신의 거룩한 뜻을 이루어 가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 이 순간에 지체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이 몸을 드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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