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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가족(로마서12:9-13)
고영수 2024-07-20 추천 1 댓글 0 조회 216
[성경본문] 로마서12:9-13 개역개정

9.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나님의 가족(로마서12:9-13/2024.7.21.오전)

 

1. 어느 선교사님이 췌장암으로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는데, 친구 목사님이 제게 하는 말이 죽은 사람은 천국 가고, 남은 가족은 벼랑 끝으로 몰렸다고 했습니다.

벌써 십수 년이 지난 일이지만, 가끔 그때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은 제 주변에 그런 분들이 더러 계시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남은 가족에게 살아갈 방도가 없는 것입니다.

선교사님의 죽음은, 남은 가족에게는 그를 통해서 지금까지 이어져 왔던 생명줄과 대부분의 관계가 단절되는 상황이고 보니, 그야말로 남은 가족은 광야로 내몰리고 벼랑 끝에 설 뿐만 아니라, 그 후에는 빠르게 그들로부터 잊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지구촌에서 한국 선교사들의 발걸음이 닫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세계 어디를 가도 쉽게 한국 선교사들을 만날 수 있고 낯선 땅에서 그들의 도움이 오래 기억에 남기도 하는데,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것이 선교대국인 한국 교회의 자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불의의 사고를 만났을 때, 그곳에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것은 한국교회의 자존심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41년을 일본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내년에 은퇴를 앞두고 있다 보니, 앞서는 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맺으며 함께 선교의 장을 열어갔던 교회나 소속 선교단체와의 관계도 그렇고, 선교현장에서도 별로 뾰족한 대안이 없는 것이 많은 선교사의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모여 있는 이 공동체는 무엇으로 살아가며 어떻게 형성이 되어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우리에게 정답을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물론이고 가장 가까운 이 교회와 우리는 어떤 관계를 이루어야 하며, 그 관계를 바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오늘 본문은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2. 동경 오꾸보하면 오사카의 쯔루하시처럼 한국 사람들과 그들의 상권이 밀집해 있는 지역입니다.

그런데 그곳의 어느 가게에 안내문이 붙었는데 중국인, 한국인은 출입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내가 그런 외국인들을 상대로 억지로 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1972년에 이소룡을 주인공으로 한 홍콩에서 제작된 정무문이라는 영화에서 상해의 어느 공원 입구에 중국을 점령한 일본인에 의해서 '개와 중국인은 들어갈 수 없다'(狗與華人不得入內)는 안내판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 개가 이제는 한국인으로 바뀐 것입니다.

어떤 이유에서 동경의 가게가 그런 안내문을 붙였는지 짐작 가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글로벌 시대에 우리가 이웃 나라나 다른 민족과 함께 왕래하며 어울려 살아야 한다면, 내 생각과 감정을 앞세우기 전에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서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신앙생활을 잘하고 싶지만, 그것이 뜻대로 되지 못해서 이 교회 저 교회를 떠돌아 다니는 사람이 의외로 많이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마음에 드는 교회는 어디를 가도 없습니다.

그 이유가 교회는 죄인이 찾아오는 곳이고, 그 죄인도 천차만별의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섬기고 있는 그 교회를 남들이 찾아오고 싶고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 그런 매력적인 교회로 만들지 못하면 나는 물론이고 많은 사람이 여전히 떠돌이로 남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내가 먼저 사랑을 주고 내가 먼저 아름답고 복된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여기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3. 13:10절에 보면,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 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율법이라고 하면 엄격한 계명이나 귀찮은 명령으로 연약한 인간에게 엄격한 잣대로 판단하고 강요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서로 사랑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본문 11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이것은 그가 죄 가운데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토록 자기 자녀로 삼으신 그 은혜에 보답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거짓 사랑에 너무 많이 속았습니다. 위선의 함정에도 너무 많이 빠졌습니다. 뒤통수도 많이 맞았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나쁜 놈이 타인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나의 거짓 사랑과 나의 위선이 다른 사람까지 위선자로 만들고 거짓 사랑에 빠지게 한 것입니다.

 

4. 지금까지 우리는 생각하기를 율법과 계명은 우리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그 공로를 의지하는 믿음만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시편기자는 고백하기를, "환란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119:

143)이라 하였습니다.

단언하지만 율법과 계명은 구약시대에만 해당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일요2:4-5절에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서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고 하였습니다.

신약시대의 성도들도 구약시대의 성도들처럼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 끝을 내면, 우리는 주님의 표현대로 회칠한 무덤(23:27)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적용하는 것입니다.

적용한다는 말은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맞춰 사용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들은 말씀을 공중에 날려 보내지 말고 내 삶에 맞춰 행동해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법대로 관례대로만 하지 말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이해하며 또한 용납하고 억울한 마음이 들어도 참아 주는 것입니다.

 

5.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남들과 경쟁해서 일등이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 모임에 가서도 높은 자리에 앉지 말고 말석에 가서 앉으라 하셨습니다.

사람들 모임에 가보면, 단체 사진 찍을 때, 맨 앞자리 사진발이 잘 나오는 자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합니다. 강사나 중요인사들 옆에 먼저 가서 앉으려고 합니다.

그런 사진 어디에 써 먹으려고 그러는지 몰라도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은 사랑이고 섬김이고 용서였습니다.

그리고 요14:23절에 보면,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라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삶의 질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질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남들보다 더 잘 먹고 잘 사는 것입니까? 남보다 더 뛰어나는 존재로 인정받는 것입니까?

삶의 질은 인간답게 살 때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간답게 사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을 요약해 보면, 첫째로 의로운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불의로 가득 찬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선과 악에 대한 개념이 사라지고 여기에 대한 경계선이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거짓이 없는 사랑을 베풀며 선한 자 편에 서서 악을 미워하라고 했습니다.

 

6. 둘째로 자신의 주변을 사랑으로 관계를 형성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함께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믿음의 형제들에게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은 같은 그리스도 보혈의 은총을 입었고, 같은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10:42절에 보면,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가 상을 잃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흔히 이 말씀을 넓은 세상에 적용시키는 말씀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9:41절에 보면, 같은 말씀을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고 함으로, 이것이 먼저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시행되어져야 마땅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섬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믿음의 형제에게 먼저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경우는 규모가 매우 작아서 얼마든지 가족처럼 가까이하며 아름다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어서 아주 적절한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셋째는 자신의 영성을 키우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기 위해 부지런한 것은 영성을 키우는 방법입니다.

환란에 인내하며 소망을 잃지 않는 것도 영성을 키우는 방법입니다.

손 대접하기를 먼저 하는 것도 영성을 유지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7. 현대인들은 인생 전체를 재미를 추구하는데 걸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소중하고 귀중한 것도 재미가 없으면 관심도 가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알게 모르게 점점 게을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가족인 믿음의 사람들을 섬기려면, 열심을 품고 게으르지 말고 힘쓰라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열심은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신앙의 열정이 뜨거운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주님 사랑하는 마음이 뜨거운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영적으로 죽거나 잠을 자지 않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주님은 우리에게 그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딤후1:7절에 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 이라 하였습니다.

주님은 그런 마음을 우리에게 부어주시고 새 영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할 수 있고, 원수도 용납할 수 있으며,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들의 모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본을 보여 주신대로 사랑과 섬김으로 다가갈 때, 우리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으며, 이 교회가 사람들이 원하는 교회가 되며, 세상을 향해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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