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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일을 벗고(로마서13:11-14)
고영수 2024-09-07 추천 1 댓글 0 조회 28
[성경본문] 로마서13:11-14 개역개정

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어둠의 일을 벗고(로마서13:11-14/2024.9.8.오전)

 

1. 기독교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초대교회의 교부 중의 한 사람인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히포넨시스(Aurelius Augustinus Hipponensis), 우리가 잘 아는 이름으로 부르면 성 어거스틴인데, 그는 어려서부터 극도로 방탕한 생활과 함께 마니교라는 잘못된 종교에 빠져서 젊은 시절을 허송세월로 보내다가 어느 날, 자신이 죄의 노예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곳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그럴수록 절망과 비참함의 벽에 부딪혀 고통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어린아이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톨레 레고(tolle lege)라고, 이것은 라틴어로 집어서 읽어라!는 뜻인데, 그는 즉시 성경을 펼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부분을 읽었는데 그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이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13:13-14). 이 말씀은 타락한 어거스틴의 폐부를 깊숙이 찔렀고 그는 그 자리에서 고꾸라져서 회개함으로 오랜 세월의 방황을 접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오랜 세월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쏟았던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의 기도의 결과였습니다.

수많은 이단의 공격과 철학의 궤변으로부터 기독교를 지켜낸 인물이 바로 어그스틴입니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방탕한 인생을 불러 2천 년 기독교 역사의 주춧돌처럼 사용하신 하나님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2.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죄 가운데 빠진 인생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있습니다.

구원이라고 하면 과거, 현재, 미래적인 의미가 있는데, 그 가운데서 우리가 바라보고 기다리는 미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를 위해 다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날을 바라보는 신앙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이미 오셨는데 그것을 가리켜 초림이라고 하는데, 3:17절에 보니,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하셨고, 또한 일요3:8절에 가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고 했습니다.

마귀의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은 사람들을 죄로 묶어서 영원한 저주와 죽음에 던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죄와 죽음, 그리고 온갖 고통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몸을 우리 대신에 죄값으로 십자가에 내여 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첫 번째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 11-12절에서,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 다고 하였고, 또한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 다고 했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이 시대가 종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그 증거로 이 세상 사람들의 삶이나 행위를 보여주면서, 이런 삶에 대하여 우리에게도 경고를 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의 삶과 우리가 또한 받아야 할 경고는 무엇입니까?

본문 13절에 보니 "낮에와 같이 단정하게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 시대의 사람들이 방탕하며 술 취하며 음란과 호색에 빠져 있으며 싸움질과 시기로 가득한 삶을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25장에서는 불법이 성행하고 사랑이 식어지고 핍박과 배교의 현상이 일어나고, 딤후3장에서는 성도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딤후3:1-5에 보면 타락한 성도들의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문제는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나 생각이 어떤 상태에 빠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야말로 노아의 시대에 망해서 죽을 때 까지도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온갖 악을 행하면서도 의롭고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성도들을 비웃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봐야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9: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우리의 구원이 가까워졌으니 이제는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4. 인간의 육체의 욕심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육체가 원하는 것과 둘째는 마음이 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육체가 원하는 것만 죄악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원하는 것도 죄악이고 마음의 잘못된 원함도 심판을 받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막7장에 보면,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21-23)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5:28)고 하셨고, 일요3:15절에는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 하였습니다.

성품이 나쁜 사람들은 그 행실이나 생각을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보고 듣고 배운 것이 그것뿐이기 때문입니다.

부모, 형제, 주위 사람들이 그렇게 배웠고 또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줄 모르고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자녀들이 그렇게 또 따라서 살아갑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마치 더러운 웅덩이에 모여서 돌아다니는 하루살이처럼 부모로부터 내려온 그 틀 안에 갇혀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먼 곳으로 여행도 시키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도록 해서, ! 여기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 이런 생각도 있고, 인생을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하면서 자신과 비교하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도록 만들어 줘야 합니다.

생각을 바꿀 기회를 만들고,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조건 속에서 마음을 바꾸고 인생을 재조명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온갖 악독과 더러움에 빠져서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살다가 다 망하기 때문입니다.

 

5. 예수 그리스도를 믿던지 불신하던 상관없이 모든 인생은 예외없이 심판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주님의 재림의 날에 초점을 맞추고 그 미래를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있지만, 결코 세상에 속한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세상에 속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행실과 생각을 따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노아의 시대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매일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그것이 지혜롭고 성공적이고 인생을 가치있는 존재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는데, 문제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던지 상관없이 주님의 재림의 그날은, 심판의 날은 코앞에 다가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 구원에 따라오는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고전3:13-15절에 보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떤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박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고 하였습니다.

공력이 불타버리면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화재 현장에서 벌거벗은 채로 겨우 몸만 살아남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낮 시간에 활동하는 것처럼 단정히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경험해 본 것처럼, 믿음으로 바로 살려고 노력은 하는데 환경이 어렵다 보니 자신을 고치고 인생의 방향을 바꾼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6. 그래서 사도바울은 중요한 사실을 우리에게 제안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14절의 말씀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것는 방탕함과 술취함과 음란 호색과 다툼과 시기심인데, 이런 것을 이기고 물리칠 힘이 우리에게는 없으니, 그래서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영원한 목자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며 의지하며 그에게 소망을 두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고전6:19-20절의 말씀처럼, "너희의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지불하고 우리의 몸과 생명을 주님이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육체와 삶과 생명까지 다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으니, 우리가 내 마음대로 내 정욕을 따라 사는 것은 불법이고 도적질이고 주인을 거역하는 불충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롬8:18절의 말씀대로,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의 말대로 인생이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전부라면 그리스도인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을 바라볼 줄 모르고 세상에 집착해서 살아간다면 그는 세상 사람보다 더 불쌍한 사람일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알 수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을 즐기면서 살다가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잘 알면서도 잠시잠깐의 욕심과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처럼 산다면, 그런 삶에서는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7. 그러나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이 아무리 좋아보여도 그곳에 마음을 빼앗길 수 없는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3)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핍박과 환란을 당하고, 원하는 것을 얻는 대신에 내려놓아야 할 것이 더 많고, 믿음으로 더 많이 수고하고 인내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장래에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는 자는 언제든지 어두움의 일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을 수 있으며, 내가 할 수 없고 감당할 수 없어도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면 주님이 내게 주신 사명을 다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왔다는 것은 곧 주님 재림의 나팔소리가 들려올 때라는 뜻입니다.

이 밤은 죄악과 불신앙과 배교의 시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밤은 고통과 어두움의 환란의 시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밤은 사랑이 식고 정의가 짓밟히고 포악이 난무한 시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광명의 아침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런 삶에 대해서 말하기를,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하면서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도다"(벧후3:12-13) 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이제는 어둠의 일을 벗어버리고 주님을 맞이할 영광의 아침을 위해 빛의 갑옷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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