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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자와 약한 자(로마서 14:1-12)
고영수 2024-09-14 추천 0 댓글 0 조회 9
[성경본문] 로마서14:1-12 개역개정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4.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강한 자와 약한 자(로마서 14:1-12/2024.9.15.오전)

 

1. 나라켄 출신으로 런던 올림픽에서 복싱 미들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WBA 세계 미들급 슈퍼 챔피언이었던 무라다 료타(村田諒太), 당시 복싱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교오토에 있는 난교토 고등학교(南京都高等学校)에 들어가 다케모토 마에가와(武本前川) 감독을 만나게 되었고, 그를 본 다께모토는 시험점수에서 빵점만 아니면 복싱부에 넣어 준다고 약속했고, 다께모또 감독 밑에서 열심히 기량을 다져나갔는데 어느새 3학년이 된 어느날, 시합에서 상대방 선수를 한방에 병원에 실려가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감독에게 매를 맞으며 혼이 나기 마련인데, 너의 철권 주먹을 이런 곳에서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은 너의 주먹에는 미래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감독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지만, 항상 겸손하라는 말을 반복해 주었다고 합니다.

함께 땀을 흘리며 열심히 연습을 해도 전국 무대에 나갈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으니, 이런 일로 인해서 분하고 억울한 마음을 가진 선수들 위에 네가 서 있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고통을 아는 인간이 되라(みを人間になれ)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독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적당하게 하는 시합이었다고 합니다.

시합에서 이기든지 지든지 상관없이 선수로서 경기에 임하는 바른 자세를 잃지 않았을 때는 많은 칭찬을 해 주셨지만, 승리하더라도 소극적으로 임한 경기에는 가혹한 책망을 받았다고 합니다.

감독은 반복해서 말하기를, 위기에 처할수록 앞으로 나가며 이기든 지든지 상관없이 도망가지 말고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복싱의 참모습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무라타는 말하기를 학교는 인간을 교육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무조건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면서, 바로 이것이 다께모토 감독의 정신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또한 프로 세계에서 세계 챔피언이 된 것은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정신, 특히 약하고 패배를 맛본 인간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반드시 우선해야 할 시민정신이 아니겠습니까?

 

2. 사람들이 교회를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교회가 선을 행하고 진리를 따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완벽한 모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한 판단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많은 사람이 상처받고 때로는 서로 분쟁하면서 교회가 갈라지고 사람들이 떠나는 일은 어느 곳에서나 계속해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교회는 주님의 몸이지만 이 교회 안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믿음의 여정에서 점진적으로 성화 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을 품고 있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시점에서 교회를 바라보고 성도들을 보면 불완전한 존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런 현상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교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경우는 교리 문제와 도덕적인 문제로 인해 늘 당파싸움에 휩싸여 있었고, 골로세 교회나 갈라디아 교회의 경우는 행함으로 구원받음을 강조하는 율법주의자들 때문에, 오랫동안 진통을 앓아 오기도 했습니다.

많은 교회의 중심에 있었던 예루살렘 교회조차도 이방인 문제로 인해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고, 본문 말씀에 나오는 음식물과 절기 문제로 다툼이 일어났던 로마교회도 그랬습니다.

현대교회도 많은 문제로 인해 분쟁과 분열과 오해를 이 세상에 오물처럼 쏟아내고 있는데, 문제는 우리의 대적인 사단은 항상 이런 문제를 틈타서 교회를 흔들고 성도들을 시험에 빠뜨려서 우리 모두의 신앙을 파선된 배처럼 만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3. 오늘 본문에서 드러나고 있는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음식에 대한 것과 절기에 관한 것입니다.

본문 2절에 나오는 내용은 고린도전서 8장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과 비슷합니다.

이방인으로서 기독교로 개종한 후에 보니 시장에서 파는 고기들이 전부 이방 신전에 제사음식으로 올렸다가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사다 먹는 것은 우상숭배의 죄를 짓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것은 유대인, 즉 율법주의자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인데도 어떤 사람들은 그런 고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런 고기를 먹으면 큰일 나는 것처럼 여기는 사람도 있어서, 여기서 분쟁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레위기 11장에서 부정한 음식을 먹어서는 안된다고 하였고, 반대로 사도행전 10장에서 베드로가 환상 중에 하늘로서 내려온 보자기 안에 보니 온갖 부정한 짐승이 가득한데 하늘로서 음성이 나서 이것을 잡아 먹으라고 하자, 베드로는 속되도 깨끗하지 않으는 것은 내가 신앙의 양심상 먹을 수 없다고 했더니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10:15)고 세 번씩이나 반복하고 있는데, 물론 이것은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문이 열린 것을 계시한 것이지만, 동시에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의 규례가 사라진 것을 나타내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롬14:14에서,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고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음식에 관해서 일어나는 모든 분쟁을 멈추게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4. 사도바울은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이것은 분명하게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제어할 수도 없는 참 자유를 의미하고 있는데,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여전히 율법에 묶여 있었고, 이방인은 이방 풍습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교회 안에는 온갖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하나됨이 쉽지 않습니다.

태어나고 자라난 배경이 다르고 자라면서 배운 문화적인 관습들이 다르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분쟁을 교회가 방치한다면 우리 믿음의 환경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주목할 내용은 본문의 6절의 말씀입니다.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음식을 먹고 먹지 않는 목적이니 이유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날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그 육신까지 날 위해 십자가에 내어 주신 그 주님을 위해서 그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에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목적이 예수님을 위해서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어떤 사람은 먹을 것과 먹어서는 안될 것을 분별하는 것과, 또 반대편 사람은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주님이 날 위해 주신 것이니 감사하면서 잘 먹는 것도 귀하고 옳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5.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상반된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들의 행위를 기쁘게 받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모든 행위나 생각의 최종적인 판단은 10절의 말씀대로 주님께 맡겨야 함이 마땅한 것입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고, 그곳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내가 행하고 생각한 것에 대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를 비판하고 분쟁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은 다 주님을 위해서 살고 있으며, 또한 그 주님이 우리 모두의 주인이시고 영원한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분쟁하고 대적하는 원인 중의 하나는 우리가 가장 중요한 본질을 잃어버릴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전장터에서 적군과 대치하며 싸우다가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적병을 발견했을 때, 제일 먼저 어떤 생각을 하게됩니까?

나를 향해 총을 쏘고 죽으라고 칼을 휘두르던 대적이니 죽어도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죽기를 내버려두던가 아니면 총칼도 단숨에 숨통을 끊어 놓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비록 대적이라도 죽어가는 생명은 일단 살리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자세라고 생각하고 그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주는 것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까?

문제는 생명의 주인되신 주님이 보실 때 어떤 쪽을 기뻐하시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본질적인 문제로 생명을 천하보다 더 소중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적군이라고 일단 살려 놓고 볼 일이지만, 전쟁의 승리가 목적이거나 내 안전을 우선한다면 숨통을 끊어 놓는 것이 상책일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우리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분쟁에 비유한다면 과연 어떤 것이 옳은 일입니까?

 

6.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더 이상 유대인으로 남아 있어서는 안될 것이고, 이것은 이방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을 가진 유대인이나 자유를 누리는 이방인이냐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당연히 과거의 신분을 벗어 버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인, 천국의 시민이 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의 율법의 멍에도 주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져 주셨고, 이방인의 법이 없는 삶도 주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청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몰랐을 때는, 나와 의견이 다르고 행동이 다른 사람을 향해 비판하거나 업신여기거나 성경 구절을 인용해서 함부로 판단하거나 의심한다면, 이것은 혹시 내가 승리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결국 하나님의 일을 무너지게 만드는 것이 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전10:33)고 하였습니다.

본문에서 강한 자와 약한 자가 나오는데 과연 누가 강한 자이며 누가 약한 자입니까?

약한 자는 율법이나 종교의 규례에 얽매여 용서보다는 판단하고 심판하기를 좋아하는 자가 약한 자이고, 강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행하심과 같이 약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으로 행하는 자가 강한 자입니다.

약한 자는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강한 자는 양보하고 대적이라도 용서하고 용납하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강한 자는 생각하기를,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 사는 것도 아니"(고전8:8)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일은 사사로운 일이라 생각하고 늘 용서하고 이해하고 담대하게 넘어가는 사람입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습니다(벧전4:8).

 

7.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꺼리고 싫어하는 음식을 내가 먹지 않고 참을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문제에 약한 믿음의 형제를 위해서라면 내가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했습니다(고전8:13). 바로 이것이 강한 자의 모습이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남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은, 내 생각과 다른 그 형제를 하나님이 이미 받으셨을 뿐 아니라, 그를 위해서도 주님이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0절의 말씀대로 믿음의 형제를 비판하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고 교회의 머리 또한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연약한 자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대신에 내가 그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바른 믿음으로 이끌어 주는 강한 자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교회와 성도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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