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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것이 첫째는 아니다(로마서14:13-23)
고영수 2024-09-21 추천 0 댓글 0 조회 77
[성경본문] 로마서14:13-23 개역개정

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15.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16.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19.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20.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21.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22.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강한 것이 첫째는 아니다(로마서14:13-23/2024.9.22.오전)

 

1. 하야시 후미오(林文雄1900-1947)는 북해도 삿뽀로에서 태어나서 북해도 제국대학의 의학부에서 해부학을 전공했지만, 이 일에는 전연 재미도 관심도 없어서 고민하던 중, 어느 날, 한센씨 병을 앓는 환자를 처음 보고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결국 이 날의 충격으로 인해 그는 평생을 한센씨 병을 앓는 사람들 곁에서 그들을 돌보다가 46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부친 하야시 다께지로(林竹次郎1871-1941)는 화가로 교육가로 또한 경건한 크리스챤으로 평생을 살았는데, 너무 가난한 생활에 아들이 의사가 되면 조금이라도 생활이 나아질 것을 기대했는데, 시골에서 그런 병자나 돌보는 모습에 크게 실망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도 아들을 따라 한센씨 병자들을 돌보다가 소천하셨는데, 그가 남긴 작품 중에 아침의 기도(朝の祈り)가 있는데, 부부 두 사람이 어린자녀 셋과 함께 다다미 방의 탁자를 둘러 앉아 아침예배를 드리는 모습으로 이 작품은 당시에 전쟁으로 치닫고 있던 군국주의 국가를 상대로 반전과 평화를 깨우쳤던 유명한 작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얻은 수입을 한센씨 병자들을 위해 기부하였고, 또한 일본기독교단 소속의 삿뽀로기따이치조우(札幌北一条)교회의 장로로 섬기다가 가셨습니다.

속된 표현으로 춥고 배고프고 불안한 미래에 둘러 쌓여 있으면서도, 아버지와 아들은 온 몸으로 이 땅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제 자신의 몸으로 표현하면서 사회적으로 버림받고 가장 약한 그들의 친구가 되어 한 평생을 그렇게 살다가 갔습니다.

 

2. 오늘 본문의 말씀은 교회 안에서 음식물을 둘러싸고 믿음이 강한 자와 믿음이 약한 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은 본문에서 두 가지 단어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 첫째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는 범사에 믿음을 따라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미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지만, 레위기 11장에는 음식물에 관한 규정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을 구별하고 있는데, 율법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 신자들에게 주로 해당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방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된 성도들의 경우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으로 모든 음식물은 깨끗하다(막7:19)는 말씀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서 무슨 음식이든 신앙적으로 구애받을 필요가 없이 자유롭게 먹어도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딛1:15절에 보면,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본문 20절에도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하였으니, 결국 음식물에 관한 판단은 우리 마음의 문제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같은 교회 안에서 함께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 사이에서 이와같이 음식물이 정결한 것이냐 그렇지 못한 것이냐를 두고 서로 판단하고 비방하고 공격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음식물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불결하게 생각하고 문제삼는 그 사람의 마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3. 교회 안에는 이런 문제로 인해 두 가지의 생각이 충돌하게 됩니다.

첫째는 믿음이 강한 자는 무엇을 먹어도 문제가 될 것이 없지만, 믿음이 약한 자는 그런 문제로 인해 마음에 꺼리낌을 가지고 괴로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믿음이 약한 자는 이것 저것 조심해서 가려 먹는데, 함부로 먹는 사람들을 보고 시험에 들기도 하는데, 이것을 곁에서 보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믿음을 의심하거나 조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문제는 그다지 우리에게 큰 문제로 다가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다른 예화를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일본의 어떤 목사님이 동지사 대학에서 신앙집회를 하고 있는 곳에 불신자 친구 한 사람을 데리고 갔습니다.

20-30명쯤 모이는 그룹이 교정의 한쪽 잔디밭에 모여 앉아서 강의를 듣고 있는데, 한 목사님이 앞에 나와서 강의를 하려고 하면서, 자가기 들고 있던 성경 찬송을 바닥에 포개어 놓고 그 위에 엉덩이로 깔고 앉아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불신자 친구는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행동을 한 목사님과 그런 행동을 보고 실망한 불신자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실 성경책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쏟아져 나와 있는 수많은 책 중에 한 권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깔고 앉든지 물건의 받침으로 사용하던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성경책 안에 기록된 내용이 우리 성도들에게는 너무 소중한 진리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는 그렇게 함부로 대할 물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온 편지 한 장도 소중하고, 사랑의 기념으로 나눠가진 작은 기념품 하나도 그렇게 소중한데, 날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임을 당하시고 그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기록된 성경을 어떻게 엉덩이에 깔고 앉을 수 있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불쾌하고 불만스러운 행동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불신자 친구는 아마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믿고 자신있게 증거하는 그 내용이 기록된 성경책을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깔고 앉는 것을 보니, 이 사람은 아마 반쯤 거짓말쟁이일 것이라는 것입니다.

 

4. 내 신앙의 양심상 아무런 꺼릴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면, 그 주위에 있는 사람 중에는 누군가는 그 사람의 이런 태도에 상처를 받을 것이고, 심한 경우에는 교회를 떠나거나 믿음을 포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그렇게 상처받는 사람을 위해서도 예수님은 자기 몸을 십자가에서 버리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이 살려 놓으신 형제를 내 잘난 믿음이 그 형제를 다시 죽이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부자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흥청망청 쓰면서 내 돈 내 마음대로 사용하는데 누가 시비를 걸겠느냐고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여러분은 이런 사람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내가 돈이 많다고 그 재물로 많은 사람들을 죄짓게 만들고 고통하게 만들고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다면 그것은 범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은 믿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배운대로 내 믿음을 따라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믿음이 약한 자들이 간섭하거나 충고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교회 안밖에서 거침없이 행동한다면 여러분은 이런 사람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예를 들어 조용하고 엄숙한 교회 안에서 기도 시간에 갑자가 어떤 사람이 방언으로 소란스럽게 기도하면 여러분은 그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며, 또 방언하는 본인의 경우도 엄숙하게 기도하는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겠습니까?

방언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폄하하고, 방언하지 않는 사람은 방언을 쏟아내는 사람을 절제할 줄 모르는 무지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서로 공격한다면, 결국에는 서로가 상처를 입고 믿음의 공동체는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강철은 강할 수록 휘어지게 만들려면 물리적으로 엄청난 힘과 수고를 쏟아야 하지만, 대나무는 조금만 힘을 

가해도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강하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며, 도리어 강하기 때문에 더 많은 저항과 어려움에 처할 수 있으며, 더 큰 힘을 만날 때에는 부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5. 서두에서 이미 말씀드린대로 오늘 본문의 내용은 19절에 기록된대로, 첫째는 본문 14-15절에 기록된대로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야 할 것이고, 그래서 모든 일에 있어서 사랑으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내가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도 그 믿음이 다른 믿음의 형제들을 고통하게 만들고 상처를 주거나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든다면, 그 믿음은 행함에 있어서 문제가 있는 것이고, 이런 사람은 먼저 절제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옳다고 생각해도 그것이 다른 믿음의 형제에게 거리낌이 되고 상처가 된다면 조심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본문 20절에도 보니 먹는 음식으로 인해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21절에 가서는 사도바울이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고 하였습니다.

둘째는 범사에 믿음을 따라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22-23절의 말씀입니다.

한국교회의 전통은 그리스도인들은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다고 여겨왔는데, 최근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이런 일을 행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딤전4:4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하면서 이런 일들을 담대한 마음으로 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술이나 담대를 한다고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술 담배는 그리스도인들의 경건의 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그런 것들이 알게 모르게 자신의 신앙의 양심을 찌르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일입니다.

목회자를 포함해서 교회 지도자들이 이런 것을 행한다고 하면 누가 그런 지도자를 믿고 따르겠습니까?

 

6.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술을 마시고 운전하는 사람들에게는 국가가 엄격하게 통제를 하고 법의 심판으로 엄한 벌을 내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 잔의 술이 끔찍한 사고를 일으키는 것을 우리는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없는 상처가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잠23:29-30)고 하면서, “그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 것이요 독사 같이 쏠 것”(32)이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엡5:18절에서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10월20일이면 우리 교회가 창립 40주년 감사예배를 드리는데, 준비하는 과정에 생각해 보니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걸어온 길이 전부 죄와 불충한 것 뿐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매일 매일이 죄의 연속이었고, 회개하고 돌아서면 또 같은 죄로 옷입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그런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셨고, 주님은 따지지도 책망하지도 않고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자신의 보혈로 씻어 주셨습니다.

수백 번 수 천번 반복된 죄와 허물을 미리 다 아시면서도 우리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고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기 앞서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나는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형제가 가지고 있는 죄와 허물은 없었는지, 내 믿음을 내 삶에 적용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미리 생각하고 행동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7.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의를 행하고 화평을 이루며 그것이 함께 모인 모든 사람에게 기쁨이 되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 세상에 똑같은 모양을 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은 생각이나 믿음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강한 자는 여유가 있기 때문에 이해하고 용납하고 용서할 수 있으며, 작은 상처와 시험에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약한 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주 사소한 것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비판하고 정죄하고 방어 차원에서 다툼을 일으키는 법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고 하셨습니다.

모든 일에 사랑의 마음으로 다가가고 매사에 믿음으로 대응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되고 영원한 강자인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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