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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이 있는 자(로마서15:1-13)
고영수 2024-10-05 추천 0 댓글 0 조회 115
[성경본문] 로마서15:1-13 개역개정

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3.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5.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6.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8.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9.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10.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11.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12.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소망이 있는 자(로마서15:1-13/2024.10.6.오전)

 

1. 영국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술은 일반적인 음료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러나 박애정신의 일환으로 시작된 차를 마시는 붐이 일어나면서 1830년대부터 절제운동이 확산되기 시작했고, 술뿐만이 아니라 담배를 피우지 말라, 극장에도 가지 말라고 했고, 이런 운동이 미국으로도 확산되면서 나중에는 여성들이 모여서 술집 앞에서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면서 남편들과 아이들에게 술을 팔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였고, 이 운동은 남북전쟁 이후에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된 음주 문제에 정면 도전하기 시작했고, 1883년에는 세계기독교여자절제회(World Woman’s Christian Temperance Union, WWCTU)가 만들어지면서 이 운동은 미국뿐만이 아니라 전세계로 확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교회가 성도들이 극장에 가는 것이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화투 놀이며 심지어 신문의 연재 소설을 읽는 것도 금지했습니다. 이런 내용들이 설교의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 이외에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해서는 안되는 금지 사항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인터넷이며 유튜브, 휴대폰, 게임에 관해서 교회가 거의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의 생활에 너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그만큼 우리의 신앙을 위협하고 있는 문명의 이기에 대한 경계심이 무너질 뿐 아니라, 우리의 영적인 감각이 그만큼 때가 묻고 위기의식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옛날부터 성도들의 거룩한 삶을 위해서 금지하고 경계하고 있는 것들의 본질은 하나같이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들 뿐입니다.

술 때문에 피해를 보고 망가지는 인생이 당사자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조차 피해를 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직 자기만을 위해 먹고 마시고 취하는 것은 너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이런 행위에 대해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라고 하면서, 오히려 이웃을 기쁘게 하라고 했습니다.

 

2. 인생을 살면서 많은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지만, 정말 당하고 싶지 않은 고통 중에 하나가 있다면, 사람을 잘못 만난 인간관계를 통해서 고통을 당하는 것은 누구나 피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만큼 인간관계를 통해 고통받지 않는 사람이 없으며, 이런 고통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서 사람을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내 배에서 나온 자식까지도 원숫덩어리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실제로 자식이 부모를, 부모가 자식을 죽이거나 버리는 패륜은 뉴스거리도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왜 인생이 이런 관계를 통해서 고통을 받아야만 합니까?

그것은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죄로 얽히고설킨 그런 관계가 사람을 고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번에 한국을 갔더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 주변에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사기를 당하고 고통당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에는 위로를 얻고, 연약할 때에는 힘을 얻어야할 그런 인간관계가 도리어 개인의 욕심 때문에 심할 경우에는 회복할 수도 없을 정도의 타격을 입히기도 합니다.

욕심이나 정욕이나 탐욕, 온갖 더러운 죄가 나 자신만을 섬기고, 나 자신을 신의 반열에 올려놓으려고 하므로 생기는 고통들입니다. 결국 이런 것들은 다 우상숭배와 같은 죄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고, 주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우리가 영원히 복된 존재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온갖 인간관계를 통해서 맛보는 고통해서 해방되는 자의 삶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데, 첫째로,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것과, 둘째로, 이웃을 기쁘게 하라는 것과, 셋째는,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라는 것입니다.

 

3. 그런데 의문은 왜 우리가 내 자신이 아닌 남을 기쁘게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일본에서 100엔 샵은 다이소(株式会社大創産業)가 유명합니다. 해외 26개국에 9백여 매장가 있고, 일본 국내에는 4,360여 매장에 5,500억엔의 매상을 올리고 있는데, 같은 이름으로 한국에도 다이소가 있습니다(아성다이소).

한국의 다이소 회장인 박정부(1944- )198845살에 이 사업을 시작해서 지금은 국내에 1,500여개의 매장을 통해 년간 3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그는 모든 고객이 만족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품질과 가성비를 높여 가고 있는데, 그의 일화 중에 하나를 소개하면, 직원들 앞에서 5천 원짜리 지폐를 펼쳐 놓고 그 옆에는 5천 원짜리 물건을 놓고 하는 말이 고객이 이 둘을 선택할 때, 돈이 아니라 물건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파는 물건의 가치는 최소한 2배 이상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손님을 기쁘게 손님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물건을 만들고 그런 기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건을 팔아 돈을 벌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문을 많이 남겨야 하는 것이 사업의 핵심사항인 것처럼 여겨지는 그런 세상에, 손님을 기쁘게 하고 만족을 준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시대를 역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진정한 사업의 성공 비결이 아니겠습니까?

나를 기쁘게 하고 내 욕심을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이익과 만족을 공유하자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나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인생이 아니라 남을 기쁘게 하는 인생이 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4. 본문 3절에 보니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남을 기쁘게 하면서 살아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지난주에 한국 인천공항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좀 받았습니다.

공항의 아주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한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돈도 아깝고 무엇보다 맛없는 밥을 먹었다는 것이 좀 억울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누구는 그렇게 항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인천공항에 가게를 내려면 자릿세가 얼만데 손님의 입맛과 주머니 사정까지 고려해서 장사를 하다가는 몇 달도 못 가서 망할 것이라고.

그러니 이 정도의 음식으로 만족하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들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비싼 임대료를 받는 공항이 문제입니까?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요즘 일부 의사들이 국가정책에 불만을 품고 환자를 떠나고 병원을 떠나서 대놓고 대통령을 공격하면서 국가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병자의 가족들에게는 가슴에 대못을 박고, 환자들을 방치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 모든 잘못이 대통령과 국가의 잘못이란 말입니까?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 한국의 정신적인 풍토에서 보면, 내가 남을 유익하게 만들고 조금이라도 남을 기쁘게 하는 것은 내가 지는 것이고 손해를 보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입니다.

요즘 일부 의사들의 하고 있는 행동이 꼭 이런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들은 국가도 대통령도 건드리지 못하는 매우 특별한 존재처럼 행동하는데,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사실 말이야 그럴듯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남을 기쁘게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분명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5. 오늘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소망이라는 단어가 다섯 번 등장하고 있습니다.

4절에서 소망을 가진다는 이 말은, 우리가 장차 들어가야 할 하늘나라를 말하고 있습니다.

나도 내 자신을 먼저 기쁘게 하고 싶습니다. 피곤하면 나부터 먼저 쉬고 싶고, 힘든 일은 다른 사람이 맡아 주었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우리의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과연 무엇입니까? 어디에 기준을 맞추고 살아야 합니까?

우리가 이미 지나온 로마서 8장을 보면, 그곳에는 성령에 이끌리는 사람과 육신에게 지배를 받는 사람이 반복해서 나오는데, 13절에 보면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18절에 보면,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자신을 기쁘게 하는 대신에 이웃을 기쁘게 하는 이유이며, 바로 이것이 주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시는 장래의 놀라운 영광에 대한 소망이며, 고난을 이기는 이유인 것입니다.

우리는 내 자신을 기쁘게 할 수 없지만, 주님은 이미 우리에게 하나님의 긍휼을 입게 하셨고,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사죄의 은총을 누리고, 구원받아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받아 누릴 것이 없는 줄 믿습니다.

또한 우리가 이 세상에서 기쁨도 유익도 얻을 수 없다고 해도 낙심하지 않는 것은, 믿음의 조상들이 받은 그 약속들을 지금 우리도 함께 붙들고 있으므로, 영원하고 참된 승리는 오직 우리의 것임을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6.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에게는 구속함을 받은 구원의 감격이 있습니다.

세상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오늘 본문의 결론과 같은 13절에 보니,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신다고 하셨으니, 세상에서 이것보다 더 놀랍고 확실한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도베드로도 말하기를,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벧전1:21)다고 하였으니, 이리가 누릴 기쁨과 이 세상의 영광이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들 무엇이 문제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도바울은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켜,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란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서 모든 환란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고후1:3-4)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본문 5-7절에 기록된 것처럼, 우리는 첫째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을 같이하고, 둘째로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셋째로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나그네로 곧 이곳을 떠나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로 가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7. 우리는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핍박을 받아도 낙심하지 않으며, 지금 지고 물러나고 손해보는 것이 도리어 주님의 기쁨이 되고 우리의 영원한 영광이 될 것입니다.

나 자신을 기쁘게 하기보다는 이웃을 기쁘게 할 때, 이것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이것이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진 자의 삶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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