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마음 (빌2:5-8/2012.2.26 오후)
1. 사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라고 하셨습니다.마11:29에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하시면서,「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하셨습니다. 사람에게 귀한 것은 마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의 마음을 닮아 가는 자 되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유'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 자비롭게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례 요한은,「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요1:29)고 소개했는데, 어린양에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제물이란 뜻이 포함된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하나님 앞에 나갈 때, 빈손으로 나가지 않고 양을 잡아 피를 흘리고 대속의 제물로 하나님께 드림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여기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하는 것은 그 분의 온유한 성품을 나타낸 것입니다. 양은 다른 짐승에게 해를 당하는 일은 있어도 다른 짐승을 해하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마12:18절에,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하면서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한」(19-20)다 했습니다. 이것도 예수님의 온유한 성품을 나타낸 말입니다.
3. 여리고 지방을 지나가실 때 맹인들이 멀리서 예수님의 소문을 들고 주님께 가까이 오면서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소리 질렀습니다. 제자들은 떠들지 말고 잠잠하라고 야단쳤지만, 그들은 계속 소리 질렀고, 예수님은 가시던 발걸음을 멈추시고 그들을 불렀습니다.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이냐? 너희에게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고, 보기를 원한다고 하자, 주님은 당장 그들의 눈이 볼 수 있도록 치료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찾아온 많은 사람들을 보실 때 그냥 보신 것이 아닙니다. 당시 유대 나라는 로마의 속국으로, 영적으로 육신적으로 말할 수 없이 어려운 처지에 있다는 딱한 사정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목자 없는 양처럼 여기셔서 백성들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예수님의 온유한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홧김에 칼을 빼서 제사장의 종의 귀를 잘랐지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칼을 다시 칼집에 넣으라고 하시면서, 대개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경계하시고 순순히 잡히시고, 법정에 끌려 다니시면서 많은 욕을 당하셨지만, 모든 것을 참으셨고,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잠잠하셨습니다. 마지막 십자가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시면서 못 박는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온유하신 주님의 성품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서양 속담에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게도 향기를 풍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4. 예수님은 그 마음이 온유하셨기 때문에 자기를 해치는 원수에게까지도 온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강하셨고, 담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미워하셨고, 죄를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나 죄인을 불쌍히 보시고,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며, 마음이,「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마5:5)고 하셨습니다. 온유한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고 업신여김을 당하고 지는 것 같지만, 마지막에는 이깁니다. 온유한 사람이 마지막에는 이 땅을 차지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겸손하다고 했습니다. 그는 마구간에 나셨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그가 왕궁에 나지 아니하시고 마구간에 나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가난하다고 하지만 마구간에 나신 분이 계십니까? 예수님보다 더 겸손하실 수는 없습니다. 나셔서 처음 누우신 보금자리가 말구유였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적으로 볼 때 가난하게 지내셨습니다. 친히 말씀하신 대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마8:20)고 하실 정도로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예수님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 벌 옷이 없었습니다. 옷 한 벌로 사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겨울 옷 가지고 여름까지 입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 벌 옷으로 사셨습니다. 예수님이 일생 동안 사귄 사람들을 보면 어부 아니면 농부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반대하던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권력자나 부자의 친구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 무식한 사람,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의 친구셨습니다.
5. 제자들 사이에 누가 우리 가운데 제일 높으냐? 누가 제일 크냐? 는 것 때문에 토론이 생겼습니다. 그 당시 유대나라는 먼지가 너무 많아서 밖에서 들어올 때면 꼭 발을 씻어야 했는데, 넉넉한 집에서는 종들이 주인의 발을 씻어드렸습니다. 그러나 제자들 사이에는 누구 하나 발을 씻어주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내가 왜 종이나 하는 발을 씻기는 일을 해' 하고 생각하면서 서로 눈치만 보면서 버티고 앉아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손수 대야에 물을 떠다가 허리에 수건을 동이시고 제자들의 발을 하나씩 하나씩 씻겨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13:14) 이 말씀은 한마디로 "너희도 겸손하라"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도,「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과 같이 낮아지셨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십자가에 죽으셨다」 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겸손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겸손하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 멸시의 눈을 보내는 사람들을 위해서 비유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6. 두 사람이 성전에서 기도를 합니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요 다른 한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바리새인은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 앞에서 청산유수처럼 기도하는데, 한마디 한마디가 다 자기를 자랑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세리는 하늘을 향해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면서 지은 죄를 회개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하게 기도하는 세리의 기도는 받으셨다고 말씀하시면서,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겠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사57:15절에 하나님은,「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여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겸손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에게 겸손의 도, 종의 도를 보여주셨습니다. 기독교 사상가 중에서 가장 유명한 어거스틴도 그리스도인의 세 가지 덕을 말하면서 "첫째가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라했습니다.
7.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교만한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준비한 형틀에 자기 목이 달려 죽었습니다.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은 자기 능력과 지혜로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장담하다가, 미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들로 나가 소처럼 풀을 뜯어먹고 머리털은 독수리 머리털처럼 되었다가 죽었습니다. 벨사살 왕은 교만해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빼앗아온 그릇들로 고관대작들을 불러 술을 마시다가, 그날 밤 메대와 파사 연합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그 나라는 완전히 망하고 말았습니다. 잠언에도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 했습니다. 교만은 모든 죄의 어머니입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 믿기 전에는 강퍅하고 교만했었습니다. 자기보다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사람이 없다고 교만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처럼 믿지 않는 사람은 쫓아다니며 잡아 죽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영접한 다음에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아주 겸손해졌습니다. 그의 신앙은 우리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깊이가 있었고 놀라운 체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할 정도로 겸손해졌습니다.
8. 예수님의 마음은 용서의 마음입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무리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용서하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고통이 있습니다. 그는 우리를 용서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얼마나 강퍅합니까? 사막과 광야 같아서 나무들이 가시가 돋쳤고 건드리면 찌르고 고통을 줍니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꼭 품으면 사회가 달라질 것입니다. 백합이 찔리면 향기를 더 발하는 것처럼, 우리가 찔리면 그리스도의 향기가 발하게 될 것입니다. 봄을 맞이 하면서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 많은 사람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놀라운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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