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사도행전9:10-19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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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12.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제공: 대한성서공회
내가 알고 있는 것(사도행전 9:10-19/2012.4.29/2여전도헌신)
1. 일본은 스포츠에서 국기인 스모가 있고, 인기에서는 야구가 제일입니다.
12개 팀 중에 가장 인기가 많은 팀은 오사카를 거점으로 하는 한신 타이거즈와 동경을 거점으로 하는 요미우리 자이언트 팀이 있습니다.
양팀이 붙을 때에는 약 4-5만 여명의 관객이 동원되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야구는 홈을 포함한 4개의 베이스를 타자가 상대방 투수의 볼을 쳐서 날리면 상대방 선수들이 그 볼을 잡는 사이에 다음 베이스로 진출하는 방식으로 해서 선수가 홈으로 다시 돌아오면 점수를 가산해서 승패를 가리게 됩니다.
그런데 홈에서 상대방 투수의 볼을 기다리는 타자에게 보이는 것은 오직 일루뿐입니다.
분명히 2루도 있고 3루도 있고, 다시 돌아와야 하는 홈도 있지만 보이는 것은 오직 일루뿐입니다.
그러나 주자가 볼을 치고 무사히 1루를 밟고 나면 그 때부터 2루가 보이고 환호하는 관객도 보이고, 심판과 감독도 눈에 들어온다고 합니다.
홈에서는 1루밖에 보이지 않지만, 일단 볼을 치고 바깥세상인 1루로 나가면 더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 야구와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우리 인생의 미래에 대한 생각과 계획과 비전이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더 큰 세상으로 나가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운 사람과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늘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늘 보던 것만 보고 사는 사람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녀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더 많은 공부와 경험을 하도록 도와줍니다.
2. 그러나 우리에게는 세상 보다 더 넓고 더 높은 믿음의 세계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나니야라 하는 매우 경건한 신자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주의 제자로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주고 있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볼 정도로 영적인 은사와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문제는 아나니야라고 하는 이 사람이 사울이라고 하는 청년에 대한 인식이었습니다.
13-14절을 보면,「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고 했습니다.
아나니야가 들은 것은 사울이라는 청년에 대한 매우 나쁜 평판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사울을 만나라는 명령에 아나니야는 겁을 먹었습니다.
이 사람 때문에 다메섹에 있는 성도들과 자신이 당할 피해를 생각하니 두려운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진리요 사실이요 옳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예를 들어 우리 교회에 대한 평판이 세간에 나도는데 좋은 평판도 들리고 나쁜 평판도 들립니다.
교회가 성장하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면 좋은 소문을 늘어나고 나쁜 평판은 묻히기 마련이지만, 교회가 어려운 일을 당하고 또 여전히 어려운 상황에 있으면 어떤 교회든지 평판은 자연히 나쁘기 마련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오는 소리만 듣고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옳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한 번 결정한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이 잘못되었다고는 전연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에게서 듣는 말일수록 그 힘은 절대적입니다.
3. 그러나 오늘 본문이 밝히고 있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이런 사울을 통해서도 전무후무한 큰일을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에 대해서는 아나니야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오직 지금까지 사람들을 통해서 들은 사울에 대한 사실이 전부였습니다.
우리가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것도 큰 문제지만, 얄팍하고 단편적인 지식들, 이 사람 저 사람들에게서 주워들은 것을 가지고 사물이나 사건의 실체를 전부 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어디서 옵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받은 선물인 믿음을 더 크게 키우는 것은 우리 자신들의 몫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세계도 우리가 아는 만큼 자라고 배우는 만큼 성장하는 줄 믿습니다.
영적인 은사와 능력이 뛰어나고 사람들에게 칭송과 신뢰를 받는 믿음의 사람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홈에 서서 투수가 던지는 볼에 삼진 아웃만 당하면 아무리 비싸게 계약된 선수라도 1년만 지나면 그 팀에서 해고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내가 가진 능력으로 상대방의 볼을 받아쳐서 홈런을 날리던지 안타를 쳐서 1루를 향해 나가야만 2루가 보이고 3루가 보이고 홈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타자는 연습을 많이 해서 실력을 키워야 하고,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해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할 줄 믿습니다.
4. 믿음의 사람은 사람들의 말을 듣는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문제와 사건 속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와 감사와 응답의 기쁨에 빠지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의 중요한 핵심이 무엇입니까?
아나니야를 통해 문제많은 사울을 하나님이 새롭게 하시겠다는 사실입니다.
그를 통해 온 세상의 구원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은 알려고 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기의 생각과 고집을 바꾸지 못합니다.
2012년도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를 놓고 많은 전략가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박근혜를 포함한 모든 후보들이 지금 상태에서 자신을 바꾸지 않으면 승산이 없다는 것입니다.
남미나 유럽 그리고 영국에 가면 신호등보다 많은 것이 로타리입니다.
로타리는 사거리 중앙에 원을 만들어 놓고 차들이 사방에서 진입할 때 항상 자신의 오른쪽에 다른 차가 보이면 완전히 멈추어야 합니다.
이 규칙만 지키면 신호등보다 훨씬 효과있는 시스템입니다.
한국에도 제가 어릴 때 로타리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 우선순위가 지켜 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고가 많았고, 그 후로 신호등으로 전부 바뀌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오른쪽에 우선 순위를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오른쪽에 계시는 하나님에게 우선순위를 드리면 우리의 삶은 안전합니다.
아무리 복잡하고 어려운 일들을 만나더라도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먼저 귀를 귀울이고 순종한다면 모든 일은 순조롭게 잘 해결될 것입니다.
내 고집 내 생각 내 판단만이 옳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사고를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있는 성도는 내 판단에 스스로를 맡기지 않고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드립니다.
이것이 성공적이고 바른 삶인 줄 믿습니다.
5. 하나님은 오늘날도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그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내 생각이나 고집이나 내가 알고 경험한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그것 자체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순간에도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전의 실패와 고통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큰 역사에 방해꾼으로 전락할 뿐입니다.
사울이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들을 괴롭힌 일은 우리가 판단할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몫임을 16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당해야 하는 많은 고난이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들리는 소문들이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며, 어떤 것들은 심하게 왜곡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에 마음을 빼앗긴다면 복음의 일꾼으로 지도자로 세움을 입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버리고, 내가 경험한 것이 나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세상 살면서 사람들이 나이를 먹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고집이 세지고 젊었을 때 보다 더 고약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점점 떠나가고 마치 보리 세우가 자신의 껍질에 갇혀 죽어가는 것처럼 그런 불쌍한 모습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유는 자신의 생각, 고집, 판단을 버리지 못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6. 본문 17절 이하에서 아나니야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의 생각과 편견을 버리고 용기를 내어 사울을 만나러 갑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앞을 볼 수 없었던 사울의 눈을 보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럽의 복음의 역사는 사울이 아니라 아나니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일본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한 복음의 그릇으로 사용하기 위해 우리를 일본으로 보내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가진 생각보다 더 넓고 더 높은 생각을 만들어 내며, 하나님께 우리 삶의 우선순위를 드린다면 우리는 복되고 안전한 삶을 살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 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사55:8-9)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듣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시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둔다면 우리도 청교도들의 신앙처럼 그렇게 세상을 바꾸며 살아갈 수 있으며, 우리도 히브리 11장의 믿음의 영웅들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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