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요한계시록19:1-5)
고영수
2020-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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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요한계시록19:1-5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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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
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3. 두 번째로 할렐루야 하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4.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요한계시록19:1-5/2016.8.28.오전)
1. 요한계시록은 지난 2011년 4월부터 오후예배 때 강의를 시작해서 2012년 11월에 18장 까지 30번 설교하고 중단했던 내용입니다. 중단했던 이유는 좀 더 묵상을 한 후에 다시 하려고 했던 것이 그만 4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중단되었던 요한계시록을 오늘부터 오전 예배로 옮겨서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하면 흔히 생각하기를 인류의 종말에 일어날 환란과 심판의 무시무시한 내용을 떠올리게 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이 지상의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무엇인지 알게 하는 것과 더불어, 특별히 고난당하는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위로와 함께, 환란과 심판을 넘어 하늘나라에 대한 영원한 소망을 갖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3절에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고 했습니다.
오늘 19장을 열어보니 그 서두에 기록하기를,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벨론이라고 하는 음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대적하며 우상숭배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온갖 죄와 불법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는 것입니다.
2절에 보면 죄악의 도성인 이 바벨론을 가리켜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 라고 했는데, 여기서 더럽힌다는 말은 철저하게 타락시키고 두 번 다시 회복할 수 없도록 망하게 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18장에서는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절에 보면,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라고 하였고, 5절에 보면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 다고함으로 바벨론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밝히고 있습니다.
2. 애급이 10가지의 재앙으로 심판을 받았고, 노아의 시대에도 홍수로 심판을 받았고, 소돔과 고모라가 불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심판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그들의 죄악이 가득 찼기 때문입니다.
죄악이 가득찬 결과는 본문18:14절에 보니 그들이 좋아하던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지고 다시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18절에 보니 큰 성 바벨론이 어디로 갔느냐고 상인들이 애통해 할 정도로 하나님의 심판은 순식간에 이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동안 하나님을 대적하고 인류를 죄악 가운데로 몰아넣고 고통을 주던 악의 무리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다 무너지고 만 것입니다.
절대로 망할 것 같지 않던 죄악의 도성 바벨론이 순식간에 무너진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집어삼킨 앗수르는 바벨론에게 순식간에 무너졌고, 유다를 집어삼킨 바벨론은 바사왕 고레스에게 싸움 한 번 제대로 해 보지 못하고 B.C539년에 무너졌고, 이 바사 왕국은 마케도냐의 알렉산더 대왕에게 어이없을 정도로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절대적인 패권 국가들이 왜 힘 한 번 제대로 쓰 보지 못하고 무너져야 합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음녀 바벨론이 무너질 때 많은 사람들이 통곡을 하였는데 그들이 누구입니까?
경제력을 장악한 상인들과 그들로 인하여 치부하던 권력자들과, 그리고 그들에게 붙어서 기생하면서 사치하고 교만하게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티끌을 흩날리며 통곡하는 소리가 하늘을 뒤 덮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이를 갈고 통곡하며 울고 있을 그 때에, 놀랍게도 하늘에서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찬양이 온 하늘에 울려 퍼지고 있음이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 하늘에 울려 퍼지는 이 찬양의 소리를 구체적으로 보면 1절에 표현하기를,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 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믿음을 지키다가 순교한 성도들이 천사들과 더불어 주님의 혼인 잔치에 참여한 성도들과 더불어 부르는 찬양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찬송은 오래전부터 지상에서 성도들이 하늘 보좌에 앉으신 영광의 하나님께 올리던 바로 그 찬송 소리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찬송은 온갖 환란과 핍박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십자가만 붙들고 감옥이나 형장에서 구원의 감격 속에서 부르던 성도들의 찬송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배고픔을 당하고, 수도 없이 매 맞고 투옥을 당하고 억울함과 수많은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두려움없이 당당히 하나님을 찬양하던 우리의 믿음의 대선배인 사도바울의 찬송이었습니다.
그것은 오늘 21세기를 살면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의 신앙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던 이 시대의 모든 성도들이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불렀던 찬송 소리와 같은 노래였습니다.
이 땅에서는 무너지고 타오르던 바벨론의 연기 속에서 울부짖는 세상 사람들의 통곡 소리로 가득할 때, 하늘에서는 이와 같이 거룩한 성도들이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르는 찬송소리로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이 모습은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찬양이 어디서 시작된 것이며, 누구에게 무엇을 위해 올리는 찬송입니까?
첫째로, 본문 1절에서 밝히고 있듯이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음녀 바벨론과 함께 멸망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구속하시고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로 삼아 주셨으니, 이 찬양은 당연히 구원받은 자가 그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아버지 하나님께 올리는 찬송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본문 2절에서 밝히고 있듯이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 하셨기 때문입니다.
4. 그렇다면 큰 음녀의 죄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올릴 영광을 스스로 가로챔으로 자신이 마치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그렇게 행세했던 교만의 죄였습니다.
또한 온 세상을 미혹하여 하나님을 떠나 마치 자신들이 하나님인 것처럼 우상숭배 하도록 만든 마귀에게서 나온 바로 그 죄였습니다.
그 위에 더하여 시대시대 마다 수많은 성도들의 무죄한 피를 흘린 죄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음녀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2절에 보니 “참되고 의롭다” 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 분의 심판이 한 치의 오차도 잘못됨도 없는 매우 정당하고 온전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고난과 핍박을 이기고 자신의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의 인내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나는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고 나는 십자가 복음으로 인하여 감당하기 어려운 핍박을 받아도, 내가 믿는 나의 아버지 하나님은 나의 이 고난과 억울함을 신원하여 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이 음녀 바벨론을 심판하시는 그날 까지 인내하면서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이 없었더라면 벌써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닌 사람들도 많이 있는 줄 압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로운 삶과 바른 믿음을 지키려고 세상의 좋은 것들을 포기하고 주님이 베푸시는 은혜로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줄 압니다.
이 사람들이 기다리고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살을 찢고 피 흘려 죽어 주심으로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우리 주님의 공중 혼인잔치에 부름 받아서 그곳에 올라가서 그 때부터 영원까지 “할렐루야” 로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지상에서의 성도들의 지금 부르고 있는 이 찬양은 아름답고 귀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줄 믿습니다.
5. 그런데 우리는 본문에서 놀라운 사실을 한 가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신약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을 가진 이 “할렐루야” 라는 말이 여기서 처음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19장에서 1-6절 사이에서 4번이나 반복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평소에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 찬양하면서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찬송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이것이 우리가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서 올릴 찬송과 비교하면 부족하고 연약하기 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부를 천상에서의 찬송과 비교하면, 우리는 지금 부분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사도바울은 고전13:9-10절에서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고 하면서, 12절에 가서는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 했습니다.
사람은 아는 만큼 말하고, 경험한 것만큼 행동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지만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을 어떻게 다 알 수 있으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 아는 것처럼 그렇게 설교하고 찬송하고 섬기고 있지만, 과연 우리가 그리스도를 얼마나 알고 있으며 그 분의 마음을 얼마나 닮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희미하게 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지상에서 부르는 찬송과 공중 혼인잔치에서 부르는 찬송과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히 부를 찬송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종교음악의 대부 바하가 살아서 돌아온다고 해도, 헨델의 할렐루아를 수천수만 번 부른다고 해도 어린양의 혼인잔치에서 부르는 성도들의 찬양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6. 그런 의미에서 지금 지상교회가 하나님께 올리는 찬송은 천상의 찬송에 비하면 결코 온전한 찬송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요한은 의도적으로 이 “할렐루야” 라는 단어를 감추고 있다가, 온 세상을 미혹하고 성도들을 핍박하던 바벨론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무너지고 불타오르는 것을 보는 순간에, 한 번도 아니고 네 번씩이나 “할렐루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는 모습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 “할렐루야”는 결코 단순한 찬송이 아니라 성도들의 믿음의 인내와 더불어 참된 신앙고백과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경배 행위 그 자체를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상에서 고난 속에서도 살아있는 신앙고백이 가능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구원의 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은혜 안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가슴이 뜨거운 사람입니다.
그 사실을 본문 1-2절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고 하였고, 계속해서 그 분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 운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성도들이 부르는 찬송이 3절에 보니 “할렐루야”로 영원토록 그 연기가 올라간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음녀 바벨론이 자신이 세상의 주인처럼 행세하며 자신들이 만물의 주인처럼 행동하며 온 세상을 속이고 유혹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도들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속아서 음녀 바벨론에게 달려가고 그녀를 붙잡고 온갖 쾌락의 단물을 빨아 먹으면서 생명을 연장하고 있을 때에도, 이 지상의 성도들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찬송하고 그분의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7. 지금도 북녘 땅과 중공과 이슬람권, 이스라엘 같은 곳에서 신앙의 자유를 상실당한 채 고난을 당하고 있는 이 지구촌의 수많은 성도들이 남몰라 예배하고 찬송하며 믿음을 지키고 있지만, 이제 머지않아서 그들은 모든 성도들과 순교자들과 천사들과 함께 어울려 여호와 하나님께 “할렐루야” 로 영원한 찬송을 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하여 거울로 보는 것처럼 온전한 찬송을 할 수 없었고, 음녀 바벨론의 방해로 인하여 역시 온전한 찬송을 올릴 수 없었지만, 이제 주님이 우리를 공중으로 불러올리시는 그 날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가장 거룩하고 아름답고 귀하게 온전한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원한 영광을 돌리는 줄 믿습니다.
바로 그 천상에서의 “할렐루야” 로 시작되는 이 찬송을 위해서 우리 주님이 예비하신 어린양 혼인잔치가 시시각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으니, 과연 그 분만이 나의 구주가 되시고 그분만의 나의 모든 것이 되시고, 그분만이 우리의 영원한 구주가 되시는 줄 믿습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교회가 이 지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바로 이것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셨고, 우리 인생과 생명의 목적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할렐루야” 로 찬송하는 것이며, 장차 우리는 이 일을 위해 어린양 혼인잔치에 참여하고 마침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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