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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대장 예수 그리스도(요한계시록19:11-16)
고영수 2020-05-19 추천 0 댓글 0 조회 544
[성경본문] 요한계시록19:11-16 개역개정

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2.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5.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우리의 대장 예수 그리스도(요한계시록19:11-16/2016.9.11.오전)


1. 헨리 나우웬은 그의 저서 영혼의 양식에서 믿음의 사람들이 종말의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전쟁이나 지진과 전염병이나 신앙으로 인한 박해를 당하는 것이 끝이 나고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런 것들은 종말의 징조이며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이 우리가 거주할 마지막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들이야말로 우리의 최후의 구원을 준비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믿음 안에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야 마땅한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가지만, 주님이 원하시고 말씀하신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어떤 것을 희생해서라도 우리의 믿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며 이 믿음을 가지고 환란을 통과하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제는 사랑하는 후배목사님이 40대 초반의 나이로 선교지에서 소천하였습니다.
급성파종성 뇌척수염으로 인한 다발성 뇌경색으로 입원한 지 25일만의 일이었습니다.
그곳의 많은 교인들과 선교사님들이 열심히 기도하고 금식도 했지만, 끝까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말았는데 안타까운 마음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건강하고 장수하며 특별히 선교사들은 주님의 복음을 열심히 전하는 것을 소원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인간이 바라는 것과 하나님의 뜻 사이에는 적지않은 괴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천하신 목사님이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서 두 번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오지는 못했지만, 그는 그 순간까지 믿음을 지키며 이역만리 먼 곳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세상을 떠났으니 그는 분명 인생의 승리자요 영적 싸움의 승리자였습니다.

2. 우리가 소속하고 있는 이 주님의 몸된 지상교회는 늘 전투 중의 상황에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적진 한 가운데 포위를 당한 채 매우 위급한 상황 속에서 싸우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문명과 권력이 다 기독교에 대하여 배타적이고 공격적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것 하나라도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신앙과 삶을 도와주고 지켜주며 격려해 주는 것은 없습니다.
도리어 스데반처럼 바울사도처럼 순교를 당할만한 그런 환경가운데 빠져 있는 것이 이 지상교회와 성도들의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교회들은 마치 지상교회가 영적전투를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고 있지만 우리의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적진 한 가운데 내던져진 것과 같은 그런 교회를 향하여 매우 적절한 말로 경각심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하였고, 그래서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벧전5:8-9)고 했습니다.
북한이 지금까지 핵개발을 하면서 대한민국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 협박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좌우, 상하로 나뉘어 더러운 명예와 이익을 위해서 서로 치열하게 싸움질이나 하고 있으니 과연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의 미래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러한 일로 인해 남의 나라에 살면서 느끼는 부끄러움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3. 이것은 믿음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통치 회복을 위해 영적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지상교회는 이러한 영적 전쟁에는 관심도 없고 세상의 잠에 빠져서 이곳이 마치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영원한 천국인양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마귀는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을 멸망의 문턱까지 우리를 끌고 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게 임하면 깨닫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인생이 돈만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고, 둘째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풍성하고 놀라운 것인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돈이 인생살이에 편리하고 도움과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우리의 영혼을 지킬 수 없으며, 인생이 진짜 위기를 만날 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선물인 우리의 믿음은 홍해도 가르고 광야에도 길을 내며 반석이 샘의 근원이 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을 새롭게 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세상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때때로 불편하고 때때로 우리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이 믿음은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만들고 들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만들며, 환란 중에도 영원한 소망을 갖고 기뻐하며 감사하게 하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돈을 의지하고 물질을 추구하는 것 보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귀하고 보배로운 것입니다.

4. 계시록 11장에 보면 죽임을 당하는 두 증인의 이야기가 나오고, 12장에 가서는 아이를 잉태시키는 한 여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은 지상교회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을 지키기 위해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고난 속에 있는 교회들이 전연 두려움 없이 영적인 싸움을 잘 감당하고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사단의 앞잡이인 이 음녀 바벨론과 짐승의 세력을 우리가 어떻게 이길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정말 아슬아슬한 상황입니다.
우리가 중국, 러시아, 일본, 그리고 북한의 위협 속에서도, 저는 어릴 적에 눈만 뜨면 전쟁난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는데, 한국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 누구의 힘이라고 생각합니까?
미국의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연합군이 우리를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시켜 줬고, 미국이 이웃 나라와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에서 우리를 막아 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배경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모른채 일만 있으면 미국을 욕하고 반대하고 온갖 유언비어에 흔들리면서 나라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웃 강대국들의 위협에 굴하지 않을 만큼의 그만한 힘이 있으면 문제가 다릅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 비난하고 욕할 일이 있으면 마땅히 대응하고 싸울 일이 있으면 주권을 위해 싸우는 것이 당연합니다.
문제는 힘도 없고 의지도 없으면서 이웃과 강대국들을 무시하고 비난하는 것은 자살행위와 마찬가지입니다.

5. 이런 것은 지상교회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백마를 탄자가 등장하는데 그가 충신이며 진실이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분은 다름 아닌 우리의 대장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해 지금 마지막 전쟁에 나서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를 가리켜 충신과 진실이라고 했으니, 이것은 그 분이 언약의 말씀대로 행하여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다는 것이고, 이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거짓도 없이 공의로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을 위해 친히 전사로서 싸움터에 등장하고 있는 것은 본문의 말씀에 처음 나타나고 있습니다.
15절에 보니 그분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고 그것으로 만국을 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온갖 고난 속에서 인내하며 믿음을 지킨 성도들을 대신하여 보복하고 심판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백마를 타고 대적 원수를 향하여 심판과 보복의 검을 휘두르며 승리를 얻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영광을 얻을 것입니다.
문제는 나는 연약하고 부족하고 그 분이 이렇게 나를 위해 싸워주시지 않으면 승리를 얻을 수 없는 그런 존재인데, 어떻게 우리가 그 분을 모른다고 할 수 있으며, 어떻게 그분을 섭섭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도리어 사도바울의 고백대로 “내가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고전15:10) 이니 여기에 대한 성도의 반응은 당연히 감사하는 마음이어야 할 것입니다.

6. 예수 그리스도께서 날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으니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그래서 영원토록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마귀가 우리에게 절대 손 못 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이 분을 홀대하고 무시하고 불평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은 보통이고 꼭 그 분의 화를 돋우는 사람처럼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 은혜에 감사하기 보다는 불평하고, 원망할 때가 많습니다.
6.25 남침 때 대한민국 방위 전선이 낙동강까지 밀려 내려가 부산이 함락되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그 때 정일권 육군 참모총장이 더 이상 낙동강방어가 어렵다고 이승만 대통령에게 전화를 했더니, 대통령께서 이틀만 버텨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틀 후면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시작하니 나도 이곳 부산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니 자네도 끝까지 싸워 달라고 했지만, 이미 상황은 하루도 버티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이 전화를 받고 한국의 모든 목사들을 부산 초량교회에 모았는데 800명인가 모였다고 합니다.
그들이 함께 모여 망해가는 대한민국을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더니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금방 낙동강물이 넘쳐나서 인민군이 도저히 강을 건널 수 없게 되었고, 그래서 이틀을 버틸 수 있었고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하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지켜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정일권 국무총리는 자기는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그 때 상황을 보니 참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정치 경제가 잘되어서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들이 많아서 대한민국이 안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이른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잘나서 하루 하루를 어려움 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에, 나와 동행하시기 때문에 믿음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7. 세상 사람들이 사람 미워하는 것을 보면 꼭 마귀가 행동하는 것 같습니다.
집요하고 악랄하고 포기할 줄 모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공격도 이처럼 무섭고 힘든데 마귀의 공격은 얼마나 무섭고 소름이 끼치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기에는 두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주님이 나의 대장이 되셔서 대신 싸워 주시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내가 너무 감각도 없는 멍텅구리라서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무서운 줄 모르는 것입니다.
마치 문둥병자가 손가락 발가락이 다 잘려 나가고, 코와 귀가 잘려 나가도 그것에 대한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내 심령이 병들고 무디어졌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 영혼은 벌레에게 씹히면서 조금씩 조금씩 무너지고 있고, 부패해서 썩어가고 있는 것도 모르고, 그저 육신이 좋으면 모든 것이 다 잘되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본문 15절을 보면, 우리 주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는 모습이 생생하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우리를 위해 치열하게 싸우시는지 13절에 보니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이러한 모습을 미리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 틀을 밟는 자 같으냐, 만민 가운데 나와 함께 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무리를 밟았고 분함으로 말미암아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튀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 (사63:2-3)라고 했습니다.

8. 신약성경의 처음에 나오는 4복음인 마태, 마가, 누가, 요한에서 나타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온유하고 겸손함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불신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 그 분의 모습에는 이러한 온유도 겸손함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랑받는 신부에게는 신랑이 백말을 타고 전쟁터를 돌아다니며 적군들의 목을 베어버리고 그래서 그들의 피가 그 분의 옷을 붉게 물들여도, 신부된 사람의 눈에는 그것이 도리어 믿음직하고 자랑스럽게 보이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심판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은 범죄한 자들에게는 너무도 두렵고 떨리며 감히 대항할 수도 없는 무서운 상대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대장이 되시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마치 포도즙 틀에 든 포도송이가 밟히듯이  그렇게 짓눌려져서 터지고 깨어져서 두 번 다시 회복하지 못하는 멸망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뒤에서 마냥 태평하게 있는 존재가 될 수는 없습니다.
본문 14절에 보니 하늘의 군대들이 백마를 탄 그를 따르더라고 했는데, 여기 하늘의 군대는 천사를 포함한 성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전장에서 싸우는 용사로서 긴장하고 대비하는 군기가 있어야 합니다.
손자병법의 이야기를 보면, 궁 안에 있는 여성들을 군대로 소집하여 훈련을 시키는데 깔깔대고 장난질하니 훈련이 안됩니다.
그래서 명령을 내리고 불순종하는 자는 목을 치겠다고 했는데, 설마 임금의 여자들을 일개 장수가 목을 치겠는가 생각하고 여전히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잘못한 여자 둘을 본때로 목을 쳐버리자 분위기가 싹 바뀌고 구령과 호령에 맞추어 훈련을 잘 받았다고 합니다.

9. 심판을 받는 악행자들에게는 백마를 탄 그리스도는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에게는 본문 16절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시는 줄 믿습니다.
그 분이 오늘 지금도 우리를 위해 쉬지 않고 싸우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대장으로 삼고 영적 전쟁터에 출전한 성도들에게는 마귀와 그 추종자들이 아무리 성도들을 위협하고 괴롭힌다고 해도 두려움이 없는 줄 믿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한다고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슬픈 일을 만났다고 근심해서도 안됩니다.
고통스럽다고 울어서도 안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믿음만 있으면, 그 분이 나의 대장되심을 믿는다면, 도리어 세상이 가져다주는 모든 불신과 두려움과 근심과 걱정 고통을 이기고, 21:1절에 기록된 말씀대로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리 앞에 내려 올 때 까지 그 분으로 더불어 모든 싸움에서 승리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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