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리포트 (돈 리챠드슨의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김성수
2020-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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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돈 리챠드슨
제1부 1. 막연히 하나님을 기다리는 민족들
아덴 사람들
바울이 아덴에 도착하니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을 보았을 때(행17:22-23), 바울은 그 신이야말로 자신이 증거하는 「야훼」하나님임을 말했다.
주전 600년 경,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라는 헬라 철학자는 우주를 변화시키는 신의 이성이나 계획을 표현하기 위해 최초로 「로고스」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헬라철학에 대한 바울의 접근 방법을 답습했던 사도요한은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이 좋아했던 「로고스」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호칭으로 사용하였다. 이것은 기독교가 헬라 철학을 파괴하기보다는 그 중에 타당한 요소들을 완성하는 일을 했던 것이다.
가나안 사람들
우상숭배, 유아 제물, 동성연애, 성전의 음행으로 악명 높았던 가나안 사람들 중에 「한 의의 왕」이 있었고, 놀랍게도 그는 멜기세덱이었다. 이 「의의 왕」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창14:18)인 「엘 엘리욘(El Elyon)」을 겸하였다.
「엘」과 「엘리욘」은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가나안 이름이다. 여기에서 「벧엘(Bethel-하나님의 집)」이 나오고, ,「엘 샤다이(El Shaddai-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엘로힘(Elohim-하나님)」이 나왔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가나안 사람들 중에 참 하나님을 아는 멜기세덱 같은 사람을 만나리라고 미리 알려 주셨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일반 계시는 특별 계시보다 광범위하고 오래 되었고 인류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일반 계시나 특별 계시가 모두 엘 엘리욘/야훼 로부터 나온 것이므로, 멜기세덱이 아브람과 떡과 포도주를 나누고, 아브람이 그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이다.
잉카인들
행14:16-17절에서,「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을 다니게 묵인 하셨으나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라고 함으로 많은 문화 속에 잠재된 옛 전통들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찾아낼 수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잉카인들의 「비라코차(Viracocha)」다.
파차쿠티 왕은, 만물을 창조한 신은 마땅히 경배 받아야 하며, 창조를 경배하면서 피조물을 숭배하는 것은 커다란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코리칸차에서 사제들을 불러 회의 중에 「비라코차(Viracocha)」에게 드리는 찬가집을 만들었고, 그를 경배하는 예배 행위를 통치계급에만 허용하기로 하였다.
산탈인들
1867년 노르웨이 선교사인 스크레프스루드가 인도 켈커타의 북부 지역에 산탈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을 때, 그들은 반응하기를,「이 친구의 말을 들어보면 탁쿠르 지우(Thakur Jiu)께서 지금도 우리를 잊지 않고 계신다는 의미가 아닌가?」하였다. 「탁쿠르」는 산탈어로 참되다란 의미며, 「지우」는 신을 의미하였다.
그는 그들에게서 성경의 창세기와 너무 유사한 구전이 전해내려 오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으며, 탁쿠르는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신이나, 탁쿠르 자신은 모든 것을 보며, 만물을 창조하였고, 모든 것을 양육하는 신으로 믿고 있었다.
스크레프스루드는 노르웨이의 전능하신 하나님을 「구드(Gud)」라고 부른다면, 산탈인에게도 하나님을 탁쿠르지우 라고 부를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힌두교도들은 「비슈누의 열 번째 환상(The tenth incarnation of Vishnu)」기대하고 있다. 이것은 신이 인간들 중에 환생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는 말씀을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일부 불교 신자들른 부처의 다섯 번 째 환생인 「브라 아리아 메트라이(Phru-Ariya-Metrai, 자비의 주)」를 기대한다.
에티오피아의 게데오 사람들
에티오피아 남부 중앙 산악지대의 게데오인들은, 모든 것을 창조하신 전능하고 자비한「마가노(Magano)」를 믿고 있다. 왕족인 「와라사 왕게」는 낮선 백인들을 만났고, 그때에 그들이야말로 그가 찾고 있는 「마가노」로부터 메시지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음성을 듣게 되었고, 8년의 세월이 흐른 후, 선교사들이 그곳에 선교부를 세웠고, 30년이 지난 후에는 평균 200여명이 넘게 모이는 교회들을 200개 이상이나 설립하였다.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의 므바카인
므바카인은 창조주 하나님을 「고로(Koro)」라고 부른다. 「고로」는 세상에 자기 아들을 보내시고 인류를 위해 놀라운 일을 성취하셨다. 세월이 흐른 후에 우리 조상들은 「고로」의 아들에 관한 진리를 외면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잊었던 것을 「고로」의 사자들이 다시 회복시켜 주기 위해 언젠가 나타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중국인들과 한국인들
중국인들은 그 분을「상제(Shang Ti-하늘의 주인)」이라 불렀는데, 이것은 언어학적으로 히브리어의 「샤다이(Shaddai)」또는 「엘 샤다이」와 관계가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하나님」즉, 위대하신 분이라 불렀다. 중국이나 한국은 처음부터 상제나 하나님이 결코 우상으로 나타낼 수 없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처럼 보인다.
잉카의 파차쿠티가 바라코차를 예배할 수 있는 특권을 상류층에만 제한했던 것처럼, 고대 중국에서도 평민들에게 상제를 숭배하는 것을 금지 시켰고, 이로 인한 영적 공백을 유교, 불교, 도교가 메우게 되었다.
2. 잃어버린 책을 기다리는 민족들
미얀마의 카렌족
카렌족에게는 「이와(Ywa)」라고 불리는 최고의 하나님을 믿고 있었으며, 때가되면 백인들이 나타나 그들의 조상들이 잃어버렸던 책을 돌려 줄 것을 믿고 있었다.
미국 선교사들이 들어왔을 때는 이전에 들어온 선교사들에 의해 이미 5천여명의 사람들이 세례를 받은 상태였고, 이 사실을 안 미얀마의 불교도들은 수세기 동안 그들을 불교화하려는데 실패한 사실에 비추어, 수 십년 만에 기독교 선교사들이 이룬 일들을 보고 경악하고 말았다.
카친족에게도 「카라이 카상」이라고 불리우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있었고, 그들도 수 세기동안 불교라는 우상숭배를 강하게 거부해왔고, 라후족에게는 「구이샤(Gui'SHa)」라는 만물의 창조자를 믿었고, 그가 조상들에게 율법을 주었다는 전승을 가지고 있었고, 조상들이 잃어버린 책을 백인들이 가져다 줄 것을 믿고 있었다.
태국과 미얀마의 쿠이족
하나님의 사자가 오면 그 잃어버린 책을 가지고 백성들을 가르칠 것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들의 예배 장소에는 우상은 없었고, 예배의 일정한 형식은 없었지만 모여서 위에 계신 위대하신 하나님께 예배하였다.
인도의 나가족
그들은 「다른 모든 존재들보다 우월하고 땅보다는 하늘과 관련된 지고하신 인격체이신 하나의 신」에 대한 분명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름을 「체포 두루(Chepo-Thuru)」라고 불렀으며, 결코 우상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그들의 첫 열매를 드리는 일, 피의 제사, 동물 제사, 무교병, 귀를 뚫는 것, 거룩한 불을 꺼트리지 않고 보존하는 것, 일곱 숫자에 대한 특별한 관심, 수확제, 추수한 후에 나팔을 부는 것 등의 성경과 일치하는 관습들이 놀랄만큼 많았고, 그들 역시 가죽에 기록한 말씀들을 조상들에게 주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인도의 미조족
그들은 최고의 하나님인「파디안(Pathian)」을 알고 있었다. 「파」는 아버지,「디안」은 거룩이라는 뜻이므로, 「거룩한 아버지」로 불리우는 만물의 창조자를 알고 있었고, 그들 역시 조상들에게 책에 관한 전승을 가지고 있었다.
힌두교가 지배하고 있는 나가란드와 미조람에는 세계 어느 곳보다도 그리스도인의 비율이 높은 것을 자랑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유아세례를 베풀었다.
3. 기이한 풍습을 가진 민족들
보르네오의 다약족
다약 사람들은 자기의 죄「도사쿠(Dosaku-나의 죄)」를 위해, 두 마리의 닭을 잡아, 한 마리는 죽여 피를 해변에 뿌리고, 나머지 한 마리는 작은 배의 갑판 끝에 산채로 매달아 띄워 보낸다. 멀리 사라지면, 모두 손을 들고,「셀라마트, 셀라마트, 셀라마트(우리는 안전하다)」를 외친다. 이 안전은 다음 해 까지만 유효하다.
이것은 마치 유대인들이 속죄 염소를 가지고 제사 드리는 것과 같고, 히10:3-10절의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얄리족과 하와이족
얄리족에게는 「오수와(Osuwa)」라고 불리는 도피처가 있으며, 그 벽 안쪽에서 도피자의 피를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자기 종족에게 벌을 받아 죽게 되어 있다.
하와이족에게는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푸호누아 오 호나우(Pu'uhonua-o-honaunau)」
라고 불리는 거룩한 구역이 있다. 이것은 섬 전역 20개도 더 되는 지역에 흩어진 도피성들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여호수아는 히브리의 여섯성을 도피성으로 지정했는데, 그 목적은 폭력과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개인들이 도망갈 수 있도록 피난처를 제공하려는 것이었다(수20,21장).
중국인과 그들의 문자
한문의 「義」는 윗부분이 어린양을 의미하고, 밑부분의 일인칭을 의미하는 문자는, 어린양의 밑에 있는 나는 의롭다는 것이며, 「船」은 그 속에 여덟 사람이 들어 있는 배를 나타내는데, 이것은 노아의 방주 안에 있는 여덟 사람과 일치한다.
4. 기이한 이론을 말하는 학자들
에드워드 타일러(Edward B. Tylor)는, 「원시문화, 신화, 철학, 종교, 예술, 그리고 풍습의 발전에 대한 연구」라는 그의 저서에서, 인간의 영혼에 대한 개념이 모든 종교적 개념들이 유래된 자연 발생적 씨앗이라 설명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사상에 익숙해지자, 동물, 나무, 산, 강, 하늘, 자연의 힘에도 영혼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가짐으로, 정령숭배, 곧 최초의 종교가 생겨났다고 했다. 그리고, 농부들을 지배하던 귀족들은 귀족들의 신들이 평범한 사람들의 영혼과 정신을 지배한다고 가르침으로 정령 숭배로부터 다신교가 출현했고, 마침내 신들 중의 하나가 「지고의 신」으로 떠오르게 됨으로 다신론에서 단일신론이 진화되었다고 말한다.
제2부 5. 사천년의 교량
미국세계선교센터의 감독 랄프 윈터(Ralph Winter)는, 성경은 선교로 시작되며, 중심 주제는 선교이며, 하나님은 땅 위에 있는 모든 백성들을 아브라함에게 내리셨던 복으로 축복하셨다고 말하며, 그러므로 성경은 사실 창세기 12장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하나님은 심지어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꿈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셨는데(창20:6), 이것은 1)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사실, 2)창조, 3)인간의 타락과 반역, 4)하나님의 진노를 풀기 위한 제사의 필요성과 마귀의 간교한 시도, 5)대홍수, 6)많은 언어들의 출현과 흩어진 민족, 7)하나님과의 복된 관계로 인간을 회복시킬 수 있는 더 구체적인 계시의 필요성에 근거하고 있다.
또한 사도들은 자신들의 삶이 하나님의 역사적 계획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 예로 사도행전 3:25절의 「아랫줄」에 대한 베드로의 분명한 언급을 들고 있다. 「복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라는 베드로의 표현은,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축복하시려는 이차적인 목적을 가지고 계셨다는 사실을 암시하며, 그러므로 그 언약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모든 족속들에게 축복을 주시려는 4천년간 계속되어 온 하나님의 의도 가운데 하나의 도구로서 자신을 파악할 때, 우리는 무의미한 느낌, 우유부단함과 맹목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더 큰 힘으로 우리를 가장 위대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도록 할 것이다.
6. 모든 족속을 위한 메시아
예수님의 족보 속에는 네 사람의 이방여인이 나오며, 예수님 속에 이방인의 피가 섞여 있다는 것은, 예수님이 유대인의 메시야뿐만 아니라 모든 족속을 위한 메시야가 되셨다는 사실이다.
그 중에 유다의 아내 다말은 가나안 출신이며(창38장), 여리고 성이 함락되기 전, 히브리 정탐꾼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여리고의 창녀 라합은 살몬이라는 히브리인과 결혼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올랐으며(마1:5), 모압이라는 멸시받던 이방인 지역 출신인 롯도 보아스와 결혼하여 아들 오벳을 낳음으로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고, 다윗왕과 결혼한 밧세바도 헷 족속 출신으로 생각된다(삼하11:3).
이것은 예수님이 모든 족속들을 위한 메시아가 되셨다는 사실이다.
세례요한은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도록」(눅3:6)여호와의 길을 예비하였고, 예수님 자신도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칭찬하심으로, 이방인들도 유대인들과 같 같은 믿음을 소유할 수 있는 것과, 하나님의 은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셨다.
7. 사도행전에 숨겨진 메시지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행8:4-8).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위해 베풀어주신 그 아들의 선물이 유대인들만의 전용물이 되지 않도록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셨으니, 그리스도인들을 박해를 통해 여러 곳에 흩으신 것이다. 용기 있는 평신도 빌립은 성령 특공대처럼 타문화권 선교에 나섰고, 에디오피아인은 그 날 세례 받음으로, 나일강 계곡에 수천 개의 그리스도인 교회들을 설립할 수 있는 길을 예비했을 가능성을 말해 준다.
사울은 로마제국내에서 타문화권 선교를 위해서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사도들보다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누구보다도 기독교 신앙의 유대적 배경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명쾌하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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