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126 「말 못알아듣는 컴퓨터」 지난주간에는 컴퓨터의 음성시스템 프로그램을 가지고 책을 읽고, 일기를 써 가면서 새 프로그램을 익혔습니다마는, 생각한 것처럼 쉽지가 않았습니다. 전문점에 가서 헤드셋을 구입하여 열심히 프로그램의 지시를 따라서 기본적인 음성 데이터를 작성하는데, 이것 자체가 쉽지 않았고, 막상 마이크를 통해 전달되는 제 음성을 이 프로그램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바람에 컴퓨터는 반복하여 제게 다시 하라고 지시를 내리는 바람에 이래저래 시간을 많이 소모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컴퓨터 화면에는 제가 읽거나 말하는 것과는 전연 다른 글자들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서론」이라는 간단한 단어라도, 읽은 제 목소리를 화면에 정확하게 올라오도록 하는데는 무려 네 번을 반복해야만 했습니다. 물론 첫 숟갈에 배부른 것이 없겠지마는, 기대한 만큼 실망을 맛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교인들 앞에서 성경을 22년 간을 강독해 왔는데, 컴퓨터가 못 알아들을 정도로 둔한 제 말을 교인들이 용케 알아듣고 지금까지 은혜의 생활을 해 온 것을 생각하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 은혜요, 제 말을 알아듣도록 특별한 은사를 우리 성도들에게 주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또한 목사의 경상도 억양이 가세된 그런 둔한 말투로 인하여 알게 모르게 교인들도 내심 고생을 많이 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것이 부끄럽고 두려웠으며, 서울 사람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경상도 사투리를 가지고도, 이방 땅인 이 일본에까지 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음에는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고 보면, 모세도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출4:10)였지만, 결코 그 마음이나 사역 자체가 둔한 것이 아니었기에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하셨고 보면, 목회나 선교사역이 말이나 언어의 유창함에만 좌우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21세기 문명의 최첨단의 중심을 관통하며 나아가는 이 일본 땅에서,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사람들의 삶의 양태와 심리적 변화에 얼마나 복음적으로 효과 있게 대응해 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모든 사역자들의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의 말처럼,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서 알아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하였으니, 모든 사람들이 알아듣기 쉬운, 그러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변질되지 않도록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문화적 차원에서 연구하는 것 또한 우리가 받은 사명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 고 영수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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