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152 「부활의 능력을 받은 증인」 우매한 민중을 이성으로 깨우치고자 하는 계몽주의 사상이 일어나면서 이후에 서방의 기독교는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지성과 과학의 힘이 하나님중심의 신앙관을 몰아내었으며, 이성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여지없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말았기 때문에 기독교의 진리는 시간이 갈수록 그 빛을 잃어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서방 기독교가 쇠퇴하는 와중에서도 한편으로는 꾸준한 선교의 노력이 동양을 중심으로 새로운 기독교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하였고, 그 가운데서도 한국교회는 기독교를 받아들인 지 이미 100년 만에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교회의 모습으로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대형교회를 자랑하는 한국 땅의 교회들도 겉으로는 멀쩡하게 보이지만, 어느 사이엔가 능력과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그야말로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해골들처럼, 마른 뼈다귀들의 잔칫집으로 변모하고 말았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닌 줄로 생각합니다. 우리 주님은 온 인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을 떠나 생명을 잃은 온 세상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부활절을 맞이하면서 여전히 이 부활의 소식을 듣지 못한 채 무덤 속에 갇혀 있는 자들이 우리의 주위에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믿기는 믿어도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열심을 내어도 결코 부활의 능력을 받지 못한채 오늘도 뼈다귀들의 모임에서 소리만 요란한 종교생활에 사로잡힌 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생명이요 능력입니다. 죽은 영혼을 살리고, 죽은 자를 소생케 하고, 사단의 권세를 결박하는 능력 그 자체입니다. 가롯유다는 은 삼십 냥에 예수 그리스도를 팔았지만,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주의 능력과 성령에 충만하여 오고오는 모든 시대를 살리는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21일간의 새벽기도를 끝내고 끓었던 무릎을 펴고 일어나서 영광의 부활절의 아침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처음 무릎을 꿇었을 때의 우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성령과 부활의 능력에 충만한 생명력 넘치는 사람들로 새롭게 변화되고 만 것입니다. 이것은 뼈다귀들만의 모임이 아니라, 부활의 능력으로 충만한 모임입니다. 과학과 이성의 노예가 아닌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삶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마가16:17-18)하셨으니, 오늘도 이와 같은 능력이 전도자들에게 임하는 줄 믿습니다. - 고 영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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