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082
「설날」
한 해가 저물고 2006년 새해가 밝아왔습니다. 한 해를 뒤돌아 볼 때는 섭섭하고 애석한 것도 많지만, 새롭게 맞는 신년은 기쁨과 소망으로 맞이할 수 있어 감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제일 먼저 맞는 날은 정초라고 불리우는 「설」날이 있습니다.
이 설날을 옛날에는 한문으로「慎日신일」이라고 불렀는데, 그 의미는 애태울 달(怛) 에 근심할 도(忉)를 사용하여 「달도일」로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뻐하고 축복해야 할 날에 왜 근심하고 애를 태워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유는 농경민족이었던 우리나라는 정초부터 가장 큰 관심은 오로지 그 해 농사의 잘되고 못되는 豊凶(풍흉)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삼국시대에서부터 쥐나 멧돼지나 까마귀가 농작물을 해치는 것을 두려워했고, 정초에 풍년을 비는 습관에서 이와 같이 몸을 사린다 해서 설날이 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미 지나간 한 해를 돌아보면, 한 마디로 불신의 세월이었습니다. 테러와 천재지변이며, 국가적 영웅으로 취급되던 배아줄기세포의 복제에 성공한 학자의 真偽(진위)를 놓고 국가적 혼란을 가져온 일들이나, 그 위에 일본에서는 건축물의 偽装強度(위장강도)사건이며, 연약한 초등학생들만을 상대로 일어나는 살인사건들은 경악을 금치 못할 사건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연말에는 시고꾸에서 멀쩡한 모친이 자기의 7살된 아들과, 5살된 딸아이들을 산 속의 댐으로 데리고가서 그곳에서 떨어뜨려 죽인 사건도 있고 보면, 이제는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할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새롭게 맞이하는 2006년도는, 첫 날인 설날부터 慎日이라는 글에서 나타내는 것처럼, 근신하고 애를 태우지 않으면 행복은커녕 더 나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바로 이러한 세기말적인 현상들이 꼬리에서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이런 현실 속에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시면서 계속해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주려워하지도 말라」(요한14:1,27)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야말로 불안과 두려움의 사막 한 가운데를 헤매며 방황하는 여행자가 발견한 오아시스와 같은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도 내가 은혜의 삶을 살면, 빛 가운데에 거할 수 있으며,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주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따라가면 불신 속에서도 믿음의 꽃은 피어나며, 두려움 속에서도 찬양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설날은 영적 근신과 더불어 하나님을 향한 소망의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2006.1.1. 고 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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